숨통 틔운 문체부 예비전속작가제
전시 기회, 돈 없는 유망주들
작가 길 포기하는 경우 많아
전속작가 지정돼야 지원받지만
제도 운영 화랑은 국내 36%뿐
해법 보여준 '예비전속작가제'

지난 7일 만난 우민정 작가(38)는 “그동안 수도 없이 ‘작가의 꿈을 접을까’ 고민했었다”고 토로했다. 국내 최정상 학교(서울대 동양화과 학부 및 대학원)를 나온 주목받는 신진 작가의 입에서 나온 말이 맞나 싶었다. 이유를 들어 보니 고개가 끄덕여졌다. “아무리 열심히 그려도 이름 없는 청년 작가에게 전시 기회는 좀처럼 안 옵니다. 작업실 월세를 내려면 ‘알바’를 뛸 수밖에 없죠. 그러면 그릴 시간이 없고, 전시할 작품도 부족해집니다.”
지독한 악순환의 고리를 끊은 것은 2년 전이었다. 정부가 지원하는 ‘예비전속작가’로 선정되면서 자신을 돌봐줄 울타리(화랑)를 갖게 됐다. 작지만 급여도 주고, 전시회도 열어주니 마음 편하게 그릴 수 있었다. 우 작가는 “국내 미술시장이 지난해 1조원을 돌파할 정도로 호황이라지만 젊은 작가에겐 딴 세상 얘기”라며 “한국 미술이 K팝처럼 세계를 호령하려면 신진 작가들이 꿈을 펼칠 최소한의 여건부터 마련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K아트가 빠진 ‘악순환’
‘K팝 성공 방정식’의 중심에는 하이브, SM엔터테인먼트와 같은 기획사가 있다. 미래의 BTS와 에스파 멤버를 발굴하는 것도, 이들에게 노래와 춤 실력을 장착하는 것도 기획사의 몫이다. 이런 체계적인 육성 시스템 덕분에 K팝은 단숨에 세계 무대를 장악했다. 그뿐이 아니다. 한 아티스트가 주춤하면 곧바로 다른 아이돌이 빈자리를 채울 정도로 실력 있는 ‘선수’들을 꾸준히 키우는 시스템도 구축했다.미술에선 갤러리가 소속사 역할을 한다. ‘전속작가’를 선정한 뒤 이들의 작품을 팔아주고, 다양한 조언도 해준다. 하지만 2021년 기준 국내 화랑(598곳) 중 전속작가 제도를 운영하는 화랑은 215곳(36%)에 불과하다. 전체 화랑의 63%가 연간 작품 판매 수익이 5000만원도 안 될 정도로 영세해서다.
현재 국내에서 전업작가로 활동하는 작가는 1000명 정도다. 매년 각 대학에서 배출하는 순수미술 전공자가 3000명이 넘는 것을 감안하면 문이 턱없이 좁은 셈이다. 이 중 젊은 나이에 갤러리의 눈에 드는 스타성 있는 작가는 거의 없다. 재능이 있어도 돈이 없으면 먹고살기 위해 다른 길을 찾을 수밖에 없는 구조란 얘기다. 미술계 관계자는 “K아트가 K팝처럼 되려면 재능 있는 신진 작가가 끊임없이 배출되는 시스템부터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작가 지원 늘려야”
전문가들은 2019년부터 문화체육관광부와 예술경영지원센터가 운영하는 예비전속작가 제도에 주목한다. 실력 있는 젊은 미술인들이 ‘작가의 꿈’을 접지 않고 계속 도전하도록 돕는 마중물 역할을 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이 제도는 유망 작가와 우량 화랑이 전속계약을 맺도록 중개하면서 화랑에 8개월간 월 100만원씩을 지원해주는 게 골자다. 화랑은 여기에 50만원을 얹어 작가에게 월 150만원을 건넨다. 매년 100여 명이 이 제도의 도움을 받아 ‘피카소의 꿈’을 키웠다.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