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에 모습 드러내는 경포저류지의 쇠부엉이…폭설 내린 뒤 떠나
귀요미는 붉게 노을이 물들 때면 조용하게 어느 순간 어김없이 나타났다.

주인공은 전 세계에 1만 개체 이하로 추정되는 겨울 철새 쇠부엉이.
천연기념물 제324호인 귀한 몸이다.

낮에 사냥하는 것을 볼 수 있는 유일한 올빼미 종류다.

그동안 강원 동해안에서는 쉽게 볼 수 없던 종이다.

그런 쇠부엉이가 지난겨울 해가 백두대간을 넘어가면서 노을이 붉게 지는 오후 5시쯤이 되면 어김없이 나타났다.

낮에 풀숲에서 잠을 자다가 어스름한 저녁이 되면 먹이활동에 나서는 것이다.

쇠부엉이가 모습을 드러내는 곳은 전체면적 24만7천㎡ 가운데 8만3천㎡가 물이 차고 나머지는 드넓은 초지가 조성된 경포저류지.
이곳은 강릉시가 2013년 상류의 솔올·유천택지 등을 개발하면서 나오는 물을 가둬 하류의 경포호수와 바다로 내보내는 역할을 하기 위해 조성한 곳이다.

최근 메타세쿼이아 길이 알려지면서 관광객이 많이 찾는다.

갈대가 풍부하고 넓은 초지가 잘 조성돼 있어 큰고니를 비롯한 철새와 텃새 모두의 쉼터이자 보금자리가 되는 곳이다.

경포저류지는 훨씬 넓은 면적의 경포호와 경포 들녘이 경포천으로 연결돼 있어 철새들이 겨울을 보내기 안성맞춤이다.

특히 이곳은 쇠부엉이의 먹이가 되는 들쥐나 작은 새, 곤충이 많아 쇠부엉이가 서식하기 좋은 곳으로 추정된다.

그곳에 좁고 긴 날개를 퍼덕거려 파도 모양으로 낮게 나는 쇠부엉이가 노을 무렵 어김없이 나타나 활발하게 먹이활동을 한다.

처음에는 오후 4시 30분을 전후해 모습을 보이던 쇠부엉이는 이후 낮이 길어지면서 오후 5시로 출근 시간을 늦췄다.

해가 뉘엿뉘엿 질 때 나타나 저류지 초지 위 이곳저곳을 훨훨 날아다니다 갑자기 방향을 틀며 목표물인 들쥐가 있는 땅으로 돌진한다.

매번 사냥에 성공하기는 쉽지 않지만, 사냥 활동은 반복한다.

날개를 펄럭이며 나는 모습이 예술이다.

시민과 관광객들이 산책 나와 운동을 하는 곳이지만 쇠부엉이는 아랑곳하지 않고 이곳저곳을 날아다니며 사냥을 멈추지 않아 공존의 모습을 연출하기도 했다.

저류지를 날아다니다가 잠시 강릉시가 세워 놓은 저류지 안내판에 앉거나 메타세쿼이아 가지에 앉아 잠시 휴식을 취하기도 했다.

한때 2마리가 동시에 나타나기도 했으나 아쉽게도 2마리가 함께 있는 모습은 더는 볼 수 없었다.

쇠부엉이와 먹이가 같은 잿빛개구리매도 이번 겨울 쇠부엉이와 함께 나타났다.

잿빛개구리매는 천연기념물 제323-6호이며 멸종위기종 야생생물 2급인 국제적 보호종이다.

강릉을 찾았던 귀요미 쇠부엉이는 어느 눈이 많이 내린 날 홀연히 떠났다.

잿빛개구리매는 이후 더 보였으나 쇠부엉이는 봄이 오면서 귀향했는지 모습을 보지 못했다.

지난겨울 전주와 철원, 청주, 시흥 등 전국 곳곳에서 유난히 쇠부엉이 출현 소식이 많았다.

쇠부엉이는 습지 등의 축소와 매립 등으로 서식지가 축소되는 상황이며, 과거보다 지속해서 개체 수가 줄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아직 드넓은 면적의 저류지가 잘 보전되고 있는 경포저류지에서 다가오는 겨울에도 쇠부엉이, 잿빛개구리매가 잊지 않고 찾아와 재회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