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파정권 권위주의적 정책에 "국가 브랜드 타격"…자본 유출도
이스라엘 경제 주력 IT기업들, 사법개혁에 '엑소더스' 조짐
이스라엘 경제의 주력인 테크기업들이 최근 우파 정권이 추진하는 권위주의적 사법개혁안에 반발, '엑소더스'(대규모 탈출) 조짐을 보인다고 뉴욕타임스(NYT)가 23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지난 수십 년간 스타트업 국가라는 별칭을 가진 이스라엘에서 유명 테크기업들은 요즘 국외 이탈을 검토하고 있다.

기업가치가 10억 달러(약 1조3천억 원)가 넘는 파파야 그룹 등 몇몇 기업은 이미 회사를 이전하거나 자금을 이스라엘 밖으로 보낸다고 발표했다.

테크기업들은 '극우' 네타냐후 정권이 사법개혁안을 통과시켜 사법부 독립성을 제한할 경우 테크기업 천국이라는 이스라엘 브랜드에 큰 타격을 줄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기업가치가 60억 달러(약 7조8천억 원)에 이르는 클라우드 보안회사 위즈의 아사프 라파포트 최고경영자 겸 공동창업자는 사법개혁안에 대해 "이스라엘이라는 브랜드에 대한 리스크"라고 지적했다.

이어 "오랜 시간이 걸려 이 브랜드를 쌓았고, 오늘날 세계 모든 회사는 이스라엘을 사이버보안의 파트너로 신뢰한다"면서 "사법개혁은 그 모든 것을 의문에 부칠 것"이라고 비판했다.

위즈를 포함해 많은 이스라엘계 회사들이 이미 미국에 본부를 두고 이스라엘에는 자회사를 두고 있다.

그래야 투자자와 종업원들에게 회사에 대한 관심을 끄는 것이 더 쉽기 때문이다.

미국 텍사스 오스틴에서 제3의 회사를 시작하고 있는 기업인 나다브 와이즈만은 "스타트업 창업자로서 이스라엘에 다시 돌아간다고 생각하는 것이 훨씬 더 어렵게 됐다"면서 "그것이 (투자자 등에게) 어떻게 비칠지 잘 모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베세머 벤처 파트너사의 공동 창업자인 애덤 피셔는 정부가 사법개혁을 강행하면 이스라엘 테크 기업 리더들이 국외로 빠져나가는 경우가 급증하고 국내로 들어오는 것은 줄어들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 회사는 이스라엘에서 30개 이상의 스타트업을 후원한 바 있다.

베세머와 다른 벤처 캐피털사는 이스라엘 테크 기업에 대한 투자의 90%가 외국계 지불자에서 오는 가운데 단순히 기업인들을 좇아간다.

이스라엘 경제 주력 IT기업들, 사법개혁에 '엑소더스' 조짐
피셔는 자신이 이스라엘에 투자할 때 이스라엘 경제를 보고 하는 것이 아니고 기업인들을 보고 투자한다면서 "그 기업인들이 (미국 등) 다른 곳에서 사업을 하려고 한다면 그건 괜찮다"고 말했다.

벤처 기업가인 얀키 마르갈리트도 안타깝게도 현재 분위기상 이스라엘은 기업을 시작하기에 잘못된 곳이라는 결론을 내렸다고 말했다.

자본 유출도 이미 시작됐다.

부유한 이스라엘인의 자금을 관리하는 한 회사 관계자는 "고객들이 이스라엘에서 돈을 빼내 스위스와 런던으로 옮기라는 구체적인 지시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우린 대형 은행의 프라이빗 뱅킹(자산관리) 부문과 긴밀히 일하는데, 그들은 사방에서 사람들이 돈을 빼내고 있다고 말한다"고 전했다.

이미 베르비트 등 최소 9개 테크기업이 안팎의 압력 때문에 보유한 현금을 이스라엘 밖으로 빼내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도 전했다.

또 최근 수 주간 대부분의 이스라엘 신생기업이 이스라엘보다 미국에서 법인을 설립했다.

이스라엘 혁신청에 따르면 이스라엘 수출의 54%가 하이테크 상품과 서비스이다.

이스라엘인은 90개 이상의 유니콘 기업(기업가치 1조원 이상 비상장기업)을 만들었다.

이 같은 최고 수준 소득자와 이들이 경영하는 회사를 잃게 되면 세수의 81%가 인구의 20%에서 오는 이스라엘에 엄청난 타격을 가할 수 있다.

사법개혁안대로라면 이스라엘 의회 크네세트가 법안을 제멋대로 통과해도 이전처럼 사법부에서 제어할 수 없고, 집권 연정에 재판관 임명에 관한 권한을 더 부여하게 된다.

또 부패 혐의로 재판을 받는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의 권한을 강화한다.

75년 역사의 사법부 독립성이 약화하면 이스라엘의 법치가 의문시돼 경제 성장을 둔화시키고 부패를 조장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현 연정이 극단적 유대 민족주의 정당과 초정통파 유대교 정당 등으로 이뤄져 있어 앞으로 국가 자원 재분배가 그쪽으로 이뤄질 수 있다.

이스라엘에선 지난 수 주간 사업개혁안에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가 벌어진 가운데 지난주 이츠하크 헤르초그 대통령은 이스라엘 헌정과 사회가 붕괴할 위기에 처했다고 경고했다.

그러나 한때 스타트업 생태계 조성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 네타냐후 총리는사법개혁이 사법부의 지나친 권한을 견제하기 위한 것뿐이라면서 '황금알 낳는 오리의 배를 스스로 가르는 것과 같다'는 비판을 일축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