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혼 아니지만 건강보험 피부양자격 차별은 부당" 판결
'피부양자 제도' 취지 언급하며 "동성 결합도 본질적으로 동일"

법원이 21일 동성 배우자의 건강보험 피부양 자격을 인정한 배경에는 비록 사실혼 관계가 현행법상 인정되지 않더라도 정당한 이유 없는 차별은 평등의 원칙에 어긋나 부당하다는 판단이 있었다.

이같이 판결한 서울고법 행정1-3부(이승한 심준보 김종호 부장판사)는 판결문에서 원고 소성욱씨의 손을 들어주면서도 '동성 결합'과 '동성 부부'를 엄격히 구분했다.

재판부는 "동성 결합은 사실혼 관계가 아니다"라고 선을 분명히 그었지만 본질적으로 같은 두 대상에 대한 행정적 처분이 평등의 원칙에 어긋나선 안된다고 판시했다.

◇ '혼인은 이성 간에만 인정' 기존 판례 유지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먼저 소씨가 동성 김용민씨와 사실혼 관계가 될 수 있는지 판단했다.

재판부는 "원고와 김용민은 서로 반려자로 맞아 함께 생활하기로 합의하고 사회적으로 이를 선언하는 의식도 치렀으며 상당 기간 생활공동체를 형성해 동거하면서 서로 협조와 부양책임을 지는 등 외견상 우리 사회에서 혼인 관계에 있는 자들의 공동생활과 유사한 관계를 유지했다"며 사실관계는 받아들였다.

그러면서도 "이와 같은 사정만으로 두 사람 사이에 사실혼이 성립했다고 인정하기 어렵다"고 했다.

그 근거로는 헌법 제36조 제1항이 '혼인과 가족생활은 개인의 존엄과 양성(兩性)의 평등을 기초로 성립되고 유지되어야 하며 국가는 이를 보장한다'고 규정한 점, 민법도 혼인 당사자를 성별을 구분하는 부부(夫婦) 또는 부(夫), 처(妻)라는 용어로 지칭한 점을 들었다.

과거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성별이 다른 남녀 간의 결합만을 혼인으로 인정하는 판례를 남긴 점 역시 판단의 근거가 됐다.

재판부는 "입법론적으로는 몰라도 현행법령의 해석론적으로 원고와 김용민 사이에 사실혼 관계가 인정된다는 주장은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법이 개정되지 않는 한 동성을 부부로 인정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 "성적 지향을 이유로 하는 차별대우, 평등 원칙 위반"
이처럼 재판부는 소씨와 김씨의 관계를 사실혼 부부로 인정하지 않을지라도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을 차별하는 것은 평등의 원칙에 어긋난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이 사건에서 비교 대상으로 삼아야 하는 두 집단은 '사실혼 배우자'와 '동성이라는 점을 제외하면 실질적으로 사실혼과 같은 생활공동체 관계에 있는 사람'"이라며 "후자를 '동성 배우자'로 표현하기도 하지만, 개념의 혼란을 일으킬 수 있어 '동성 결합 상대방'으로 부르겠다"고 강조했다.

이어 "건강보험은 소득이나 재산 없이 피보험자에 의해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을 피부양자로 인정해 수급권을 인정할 필요성이 있고 여기에 피부양자 제도의 존재 이유가 있다"고 지적했다.

건강보험의 피부양자 인정 여부를 가릴 때 부양자와 관계의 합법성보다는 경제적 의존도를 우선 고려해야 하며, 이런 기준이 피부양자 제도의 취지에 더 합치한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또 사실혼 관계의 이성 배우자와 동성결합 상대방이 모두 법률적 의미의 가족관계나 부양의무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 정서적·경제적 생활공동체라는 점에서 다르다고 할 수 없다고 봤다.

그러면서 이성 배우자와 동성 결합 상대방이 같은지 판단할 기준을 '직장가입자와 혼인의 실질에 대응하는 합의 하에 밀접한 정서적·경제적 생활 공동체 관계에 있고 직장가입자에게 주로 생계를 의지하며 소득과 재산이 일정 기준 이하일 것'으로 정했다.

아울러 "이처럼 비교 기준을 정하면 사실혼 배우자와 동성 결합 상대방은 성적 지향에 따라 선택한 생활공동체 상대방이 이성인지 동성인지만 다를 뿐 본질적으로 동일한 집단"이라며 "동성 결합만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성적 지향을 이유로 하는 차별대우"라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피고는 양자(동성과 이성 배우자)를 달리 취급할 합리적 이유가 있는지 법원이 석명 준비를 명령했는데도 차별대우를 정당화하는 합리적으로 주장하거나 입정하지 않았다"며 "이 사건 차별대우는 평등의 원칙을 위반하는 자의적 차별"이라고 평가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