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바이오의약품 개발·제조에 쓰이는 핵심 기술을 국가첨단전략산업으로 지정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바이오산업을 지원하고 기술의 해외 유출을 막기 위해서다. 하지만 바이오업계에서 해외 진출 등을 가로막는 규제가 될 수 있다며 반발해 논란이 일고 있다.

14일 업계와 관계 부처에 따르면 산업통상자원부는 동물세포 배양·정제 기술 등을 국가첨단전략산업에 포함하기 위해 업계 의견을 수렴하고 있다. 정부는 지난해 11월 반도체·디스플레이·2차전지 등 3개 산업 내 15개 기술을 국가첨단전략산업으로 선정했다. 여기에 바이오를 추가하려는 것이다.
바이오 전략산업 추진…업계는 "족쇄 될라"

정부 “세제 혜택 등 전폭 지원”

정부가 항체·단백질의약품, 백신 상업화에 필수적인 동물세포 배양·정제 기술을 국가첨단전략산업으로 지정하려는 건 바이오산업을 적극 지원하기 위한 의도에서다. 앞서 국가첨단전략산업으로 선정된 반도체·디스플레이·2차전지에 버금가는 혜택을 바이오에도 줘 산업을 제대로 키워보겠다는 의지가 깔려 있다.

국가첨단전략산업으로 지정되면 인프라 지원과 각종 인허가 신속 처리를 위한 특화단지 지정은 물론 특성화 대학 설치도 지원받는다. 조세특례제한법상 국가전략기술에 해당하는 기술은 연구개발(R&D) 비용의 최대 40%(대·중소기업)를 공제받을 수 있다. 시설 투자에 대해서도 8~16% 세액공제를 해준다. 산업부 관계자는 “다양한 지원 정책을 적용받을 수 있기 때문에 업계에 이득”이라며 “업계를 설득하겠다”고 했다.

업계 “없던 규제 생기는 것”

‘반도체급 대우’를 해주겠다는데도 바이오업계가 이를 마다하는 건 행정규제 부담 때문이다. 국가첨단전략산업으로 지정되면 관련 기술을 가진 기업이 해외 인수합병(M&A)을 하거나 합작법인을 설립하려면 산업부 장관 승인을 받아야 한다. 항체의약품·백신 개발 및 위탁개발생산(CDMO) 업체가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다. 업계 관계자는 “해외 사업 추진에 정부 규제가 늘어나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이중 규제 우려도 나온다. 바이오의약품의 절반가량을 차지하는 항체의약품(1만L 이상 생산)은 이미 산업기술보호법 적용을 받고 있다. 대규모 생산 기술을 포함한 항체의약품 기술을 해외에 이전하거나 규제기관의 품목 승인을 받으려면 산업부 장관 승인이 필요하다. 업계로선 산업기술보호법에 국가첨단전략산업법까지 더해져 규제 대상 법률이 늘어나는 것이다.

백신업계도 걱정스럽긴 마찬가지다. 코로나19 백신에 적용된 메신저 리보핵산(mRNA) 기술의 경우 한국은 걸음마 단계다. 한창 성장이 필요한 단계인데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갖춘 반도체 디스플레이와 동일선상에서 규제를 받는 게 부담이다.

“신약 개발 속도에도 악영향”

바이오산업의 특성을 간과해선 안 된다는 목소리도 높다. 바이오의약품 개발을 위해서는 동물실험과 사람 대상 임상 1~3상, 품목 승인 등 지난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 이 과정에서 해외 임상수탁기관(CRO), 위탁생산(CMO) 업체는 물론 해외 규제 기관과 기술 자료를 수시로 주고받는다.

관련 기술이 국가첨단전략산업으로 지정되면 해외에 기술 자료가 나갈 때마다 정부 승인을 받아야 한다. 업계 관계자는 “R&D 과정에서 필요한 기술 자료를 해외에 보낼 때마다 정부 승인을 받아야 한다면 신약 개발 속도가 늦춰질 수 있다”고 했다.

한재영 기자 jy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