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빌런이 강력하고 악랄한 존재일수록 주인공의 매력은 배가 되고, 이야기가 가진 힘은 풍성해진다.
이 공식은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에서도 통용돼왔다.
지금의 MCU가 있기까지는 아이언맨·캡틴 아메리카·헐크·토르·블랙 위도우 등 수많은 히어로가 있었지만, 그들과 대적했던 '최강 빌런' 타노스도 주인공 못지않은 존재감을 내뿜었다.
그런 의미에서 마블 스튜디오의 올해 첫 작품인 영화 '앤트맨과 와스프: 퀀텀매니아'('앤트맨 3')는 MCU의 재도약을 위한 발판이 되어줄 듯하다.
MCU 5기의 첫 장을 연 이 작품에서는 타노스를 대체할 새로운 빌런 캉(조너선 메이저스 분)이 등장한다.

디즈니+ 오리지널 시리즈 '로키'에서 처음 등장했던 이 인물은 수많은 다중우주(멀티버스) 속에 다양한 모습으로 존재한다.
"내가 얼마나 많은 어벤져스를 죽였는지 알고 있나?"라는 그의 대사는 캉이라는 존재가 앞으로 출시될 MCU 작품에서 히어로들이 맞서 싸워야 할 강력한 빌런이라는 것을 암시한다.
조너선 메이저스는 담담한 어조, 깊은 슬픔이 담긴 듯한 눈망울로 시공간을 초월한 인물 캉을 흡인력 있게 연기해냈다.
'어벤져스: 엔드게임'(2018) 이후 히어로의 세대교체가 시작되면서 많은 마블 스튜디오 팬이 느꼈던 실망감을 캉이라는 새로운 빌런이 씻어줄 수 있을지 기대가 모인다.
하지만 MCU 5기의 초석을 닦았다는 점을 제외하면 '앤트맨 3'이라는 작품 자체는 그다지 매력적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타이틀롤 중 하나인 '와스프' 호프 반 다인(이밴절린 릴리)의 역할은 더욱 작아졌다.
영화는 '앤트맨' 스콧 랭의 딸 캐시(캐스린 뉴턴)가 개발한 기계로 인해 가족 모두가 양자 영역으로 빨려 들어가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미지의 세계인 양자 영역에 떨어진 이들 가족은 흩어져 있는 서로를 찾아 다시 집으로 돌아가고자 하지만, 정복자 캉을 마주하며 위기를 맞는다.
양자 영역에 갇힌 캉은 이곳을 빠져나가기 위해 필요한 '코어'를 손에 쥐고자 한다.
앤트맨은 잃어버린 시간을 줄 테니 코어를 가져다 달라는 캉의 제안을 거절하지만, 딸을 죽이겠다는 협박을 이기지 못하고 이를 받아들인다.
그러나 캉의 숨겨진 야욕이 본격적으로 드러나면서 앤트맨 가족과 양자 영역 속 사람들은 더 큰 위협에 휩싸이고 만다.

이번 작품까지 '앤트맨' 시리즈 전편을 연출한 페이턴 리드 감독은 "새로운 도시와 문명을 디자인했고, 그 안의 논리와 역사 또한 창조했다"고 밝힌 바 있다.
양자 영역은 태양, 해파리, 민들레 홀씨, 브로콜리 등 다채로운 모습을 한 괴생명체로 가득하다.
파스텔톤의 빛을 뿜어내는 신비로운 공간과 웅장하고 거대한 구조물로 가득한 무채색 공간이 공존하는데, 이러한 배경이 주는 시각적 재미가 상당하다.
그러나 이 '새로운 세계'는 되레 이야기 전개 속도를 더디게 만드는 요인이 됐다.
영화가 양자 영역이라는 미지의 세계를 설명하는 데 너무 많은 분량을 할애하면서 앤트맨과 캉의 본격적인 대결은 영화가 시작한 지 90분 정도가 지난 뒤에야 비로소 펼쳐진다.
또 그동안 다른 히어로에 비해 강력한 면모를 보여주지 않았던 앤트맨이 최강 빌런을 상대하다 보니 대결 과정이 좀처럼 설득력이 없다는 지적도 나올법하다.
딸을 향한 스콧 랭의 부성애, 예상치 못한 조력자 등 기시감을 주는 요소들이 앤트맨의 주요 동력이며 극적인 전개를 유도하는 재료다.
'앤트맨' 시리즈 특유의 발랄하고 유쾌한 분위기가 극의 초반과 후반 일부에 그친다는 점도 아쉬움을 남긴다.
15일 개봉. 124분. 12세 관람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