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설 명절을 앞둔 16일 오후 서울 송파구 가락시장에서 만난 박재남(71)씨는 연신 한숨을 내쉬었다.
경기도 용인에서 차례상 장을 보러 왔다는 그는 도라지가 든 비닐봉지를 들어 보인 뒤 "이게 2만원어치다.
작년에는 1만원이나 했을까"라며 고개를 내저었다.
그러면서 "작년에는 차례상을 차리는 데 20만원 정도 들었다면 올해는 두 배는 드는 것 같다"며 "재래시장이 저렴할 줄 알고 왔는데 똑같이 비싸서 이것만 사고 오일장에 가볼 것"이라고 했다.
물가가 고공행진을 이어가면서 차례상을 준비하는 시민들의 한숨이 깊어지고 있다.
한국물가협회가 이달 5∼6일 전국 전통시장 8곳에서 과일류, 견과류, 나물류 등 차례용품 29개 품목 가격을 조사한 결과 4인 가족 기준 차례상 비용은 25만4천300원으로 집계됐다.
작년 설(24만290원)보다 5.8%(1만4천10원) 오른 수치다.
시민들은 체감 장바구니 비용은 훨씬 비싸다고 입을 모았다.
서울 용산구에 사는 정영선(64)씨는 "작년 설이랑 비교할 수가 없다.
30년 동안 차례상을 차렸는데 이렇게 물가가 오른 건 처음인 것 같다"고 했다.
그는 "예전엔 레드향 같은 과일도 시장에서 사서 선물했는데 올해는 그것도 못 하겠다"고 아쉬워했다.

정씨는 "작년 차례상엔 과일을 일고여덟 가지는 올렸는데 올해는 사과·배·밤·대추·곶감 다섯 가지만 올릴 생각"이라며 "도라지·고사리는 생략하고 콩나물·시금치만 올리고 양도 줄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주부 김모(58)씨는 "전 부칠 때 필요한 밀가루나 식용유 가격도 너무 올랐다"며 "다 줄이고 '간편 제사'를 지낼 것"이라고 말했다.
20년 넘게 장사를 해왔다는 한 상인은 "오이나 고추, 호박이 작년보다 10% 이상은 오른 거 같다"며 "물가도 오르고 경기가 안 좋아 '너무 비싸다'며 안 사고 가는 손님들도 많아졌다"고 전했다.
물가 급등으로 지갑 사정이 가벼워지면서 매년 해오던 설 선물을 생략하거나 줄이는 이들도 늘고 있다.
GS샵 온라인몰이 지난달 28일부터 이달 6일까지 판매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10만원 미만 상품 판매 비중이 지난해 62%에서 올해 80%로 늘었다.
반면 20만원 이상 상품은 8%에서 2%로 줄었다.
직장인 이모(60)씨는 "(지인들에게) 늘 해오던 선물을 안 줄 수는 없어 올해는 좀 더 싼 선물로 준비하려 한다"며 "물가가 올라서 어쩔 수 없지 않겠느냐"고 쓴웃음을 지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