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고 오래된 느낌이 되레 매력…불편함도 신기
"콘텐츠 맥락 즐기려는 인간 본연의 감성 작용"
'Y2K 감성에 딱'…Z세대가 재발견한 '디카'
고등학생 정예은(18) 양은 지난해 여름 친구의 생일 파티와 여수 가족 여행 장면을 모두 콤팩트 디지털카메라(디카)로 찍었다.

지금은 사라진 일본 가전 브랜드 산요에서 10여 년 전 출시된 1천200만 화소의 '작티' 디카다.

정양은 "친구가 캠코더로 찍은 영상을 소셜미디어(SNS)에 올리는 걸 보고 호기심이 생겨 카메라를 찾아보다가 디카라는 것을 알게 됐다"며 "처음 접해 본 '신문물'이라 호기심이 생겨 사게 됐다"고 말했다.

2000년대 초반 집집마다 하나씩 장만할 정도로 인기를 끌다 스마트폰에 밀려 벽장 신세가 된 디카가 Z세대(1990년대 중반에서 2000년대 초반에 걸쳐 태어난 세대)의 감성을 사로잡았다.

지난해부터 이어진 Y2K(1990년대 말·2000년대 초반 감성) 유행으로 '그때 그 시절' 패션과 음악은 물론 디카와 캠코더 같은 물건마저 이들에게 트렌디한 문화로 자리 잡은 것이다.

기술 발달 덕에 사라진 귀찮고 불편한 잡일도 그저 신기한 체험이다.

대학생 김하진(20) 씨는 "카메라 본체에서 배터리를 빼서 충전하거나 '터치' 방식이 아닌 버튼을 조작해 화면을 확대 또는 축소하는 게 새로우면서도 감성적으로 느껴졌다"고 전했다.

김씨는 "어릴 때 내 사진은 전부 디카나 캠코더로 찍혔는데, 오히려 그때 그 사진을 찍은 부모님은 이제 스마트폰으로도 잘 찍을 수 있는데 뭐하러 사느냐고 하시더라"며 웃었다.

'Y2K 감성에 딱'…Z세대가 재발견한 '디카'
이들 제품은 대부분 단종된 기종이라 주로 당근마켓 등과 같은 중고거래 온라인 플랫폼이나 인스타그램을 통해 구매할 수 있다.

혹은 다른 가족이 10∼20년 전 쓰다가 방치한 구형 디카를 집에서 우연히 발견하기도 한다.

어린이집 교사 홍지수(26) 씨는 "장롱 안에서 옛날에 쓰던 600만 화소짜리 코닥 V603 디카를 발견했다"며 "초등학생 때 할머니 댁에서 동생과 트램펄린에서 뛰어노는 영상이 메모리카드에 그대로 보존돼 있어 감회가 새로웠다"고 말했다.

낮은 화질의 낡고 오래된 느낌과 왜곡된 색감, 손 떨림 현상같이 그때 기술로 미처 해결하지 못한 한계들이 디카의 매력이라고 이들은 입을 모은다.

홍씨는 원래 갖고 있던 DSLR 고급 카메라마저 처분하고 지금은 디카 3개만 갖고 있다고 한다.

그는 "한때는 스마트폰도 카메라 화질이 좋은 것만 찾았는데 언젠가부터 뿌옇게 나오는 옛날 느낌의 사진이 매력적으로 느껴졌다"며 "스마트폰으로 찍고서도 옛날 느낌으로 보정을 하다가, 이럴 거면 차라리 디카로 찍는 게 낫겠다 싶었다"고 했다.

정양도 "요즘은 사진이나 영상이 얼마나 실제와 똑같이 나오는지보다는 자신이 원하는 이미지를 담고 있느냐가 더욱 중요해진 것 같다"며 디카의 매력을 상찬했다.

전문가들은 Z세대의 감성을 터치한 이러한 '뉴트로'(신복고) 문화의 인기가 한동안 지속할 것으로 전망한다.

김성수 문화평론가는 "기성세대에겐 복고지만 젊은 친구들에겐 새로운 것의 발견이다.

이런 움직임이 앞으로도 계속 문화를 이끌어나갈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이러한 현상 이면에는 손에 잡히는 것 없이 데이터로만 떠다니는 콘텐츠에 대한 아쉬움도 깔려 있다"며 "내용뿐 아니라 냄새나 촉감처럼 콘텐츠를 둘러싼 맥락을 함께 즐기고 싶어하는 인간 본연의 감정이 함께 작용하고 있는 것"이라고 짚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