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고 의무화·성인지 교육 등 대책 마련 필요"
고령층 성범죄 피해 9년새 146%↑…"여전히 신고 꺼려"
서울 용산구에 사는 주부 A(64)씨는 지난해 말 초등학교 동창 모임에 갔다가 한 남자 동창생에게서 성추행을 당했다.

술을 마시던 동창생이 테이블 아래로 A씨의 신체를 만지고 성적 수치심이 드는 말을 친구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한 것이다.

A씨는 흥을 깨고 싶지 않아 별다른 대응을 하지 않고 웃어넘겼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모욕감이 커졌다.

그는 "나중에라도 경찰에 신고해야 했나 하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국내 65세 이상 인구가 900만명을 넘어 초고령 사회로 빠르게 진입하는 가운데 고령층 성범죄 피해자도 늘고 있다.

고령층 인구가 증가하는 데다 세대 특성상 신고를 꺼리는 만큼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9일 경찰청의 성별·연령별 범죄 통계를 보면 2021년 61세 이상 여성 성범죄 피해자는 731명으로 전체(1만8천여명)의 3.9%를 차지했다.

2012년 성범죄 피해자 가운데 61세 이상은 전체의 1.6%인 297명이었다.

피해 건수를 기준으로 9년 사이 146.1% 증가한 셈이다.

고령층 성범죄 피해자 비율은 2013년 1.9%, 2014년 2.1%, 2015년 2.5%, 2016년 2.6%, 2017년 2.8%, 2018년 3.1%, 2019년 3.2%, 2020년 3.7%로 해마다 증가 추세다.

피해 유형별로는 강제추행이 545건(74.5%)으로 가장 많았고 강간도 142건(19.4%)이나 됐다.

기타 성범죄가 26건(3.5%), 유사 강간이 18건(2.4%)으로 뒤를 이었다.

고령층 성범죄 피해 9년새 146%↑…"여전히 신고 꺼려"
전문가들은 이마저도 실제 피해 사례보다 적을 것이라고 본다.

고령층 특성상 성범죄 피해를 경찰에 신고하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김혜정 한국성폭력상담소장은 "이 세대는 성폭력을 인식하는 문화나 교육이 부족하고 피해자를 비난하는 통념이 강한 시대를 살았다"며 "성폭력을 범죄로 인식하기보다 '흉한 일'이나 '몹쓸 짓' 쯤으로 이해하고 쉬쉬하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성기 성신여대 법학부 교수는 학술지 형사정책연구 최근호에 실은 논문 '고령의 성폭력 범죄 피해자를 위한 형사 정책'에서 ▲ 피해를 알려도 믿지 않을 것이라는 두려움 ▲ 가해자와 경제적·정서적 의존 관계 ▲ 자신의 잘못으로 성범죄가 발생했다는 생각 등을 신고율이 낮은 원인으로 꼽았다.

이 교수는 낮은 신고율로 가해자 처벌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점을 지적하며 "성범죄 등 노인학대 신고 요건과 신고 의무자의 범위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노인복지법은 의료인 등 특정 직업 종사자가 노인학대를 알게 되면 노인보호전문기관 또는 수사기관에 신고하도록 의무화했다.

이를 개정해 아동학대처럼 '의심이 드는 경우'에도 신고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고령층 성범죄 피해 9년새 146%↑…"여전히 신고 꺼려"
고령층에 성인지 교육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김혜정 소장은 "복지관, 요양 및 돌봄서비스, 의료·요양기관 등에서 성폭력 예방교육과 피해자 지지 상담 등이 활성화해야 한다"며 "노년 세대가 스스로 이같은 활동에 참여할 수 있도록 다양한 기획이 이뤄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