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연구원 토론회…北경제잡지 텍스트마이닝 분석
김정은 국무위원장 집권 이후 북한 주요 경제문헌에서 '재정'과 '금융' 간 연관성이 느슨해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북한이 국가가 은행마저 통제하던 후진적 경제에서 조금씩 벗어나고 있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 제기된다.

최지영 통일연구원 연구기획부장은 17일 통일연구원 월례토론회에서 '경제연구 텍스트마이닝을 이용한 북한 재정금융제도 변화 분석'을 주제로 발표했다.

최 부장은 문자로 된 데이터에서 가치 있는 정보를 추출하는 기법인 '텍스트 마이닝'을 활용해 북한의 대표적 경제학술지인 '경제연구'에 등장하는 키워드들을 분석했다.

그는 "사회주의 경제에서는 원래 중앙은행이 상업은행 기능을 수행하며 재정과 금융이 잘 구분되지 않는다"며 "개혁을 거치며 재정은 국가가, 금융은 시장이 맡는 식으로 분리된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동유럽과 옛 소련, 중국 등은 이런 재정과 금융의 분리 작업이 단계적으로 이뤄졌지만 북한은 1990년대까지 관련 개혁이 이뤄지지 않았다고 한다.

북한은 김정일 국방위원장 집권 시기인 2006년 상업은행법을 제정해 명목적으로는 이원적 은행제도를 도입했으나, 이때 상업은행이 실질적으로 작동했다고 보는 연구자는 거의 없다는 점도 짚었다.

그러나 김정은 위원장 집권 이래로는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북한은 꽤 다양한 금융정책을 시도하고 있는데, 2015년 이후로는 공식 문헌에 지역 상업은행의 명칭도 종종 발견된다고 설명했다.

특히 '경제연구'를 텍스트마이닝 기법으로 살펴본 결과 '재정'과 '은행'의 단어간 연관도는 김 위원장 집권 이후 큰 폭으로 하락했으며, '국가'와 '은행'의 단어간 연관도 역시 상대적으로 하락세를 보였다.

'은행'과 '기업소'의 단어간 연관도는 김정은 집권 이후 오히려 하락한 반면, 기업이 이용하는 금융 서비스를 나타내는 단어들인 '예금', '대부' 등과의 연관도는 유지되거나 소폭 상승했다.

최 부장은 "김정은 집권 이후 재정과 금융의 연관성이 약화되고 있음이 텍스트 데이터를 통해 정량적인 결과로 뒷받침되고 있다"며 "그러나 상업은행의 고유 기능이 전반적으로 활성화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상업은행의 역할이 기업금융에 편중되는 현상은 저개발 국가의 보편적인 현상"이라며 "개발도상국의 경우 금융기관은 신용도가 낮고 자금 수요도 낮은 가계금융에 집중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그는 현재 북한에서도 많은 개도국이 겪는 '금융소외' 문제가 나타났을 수 있다고 예상했다.

저개발국에서는 공식금융이 가계에 적절한 금융서비스를 제공하지 않아 가계가 수수료 높은 사금융에 의존하게 되는데, 이는 가계를 높은 이자로 떠밀어 빈곤의 악순환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최 부장은 이번 연구가 "북한 공식문헌의 텍스트가 말하는 것이 정량적으로 어떻게 나타나느냐는 해석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며 "따라서 북한 당국의 정책적 관심사를 설명하는 것이지, 실제 경제 현상으로 직결되는 건 아니라는 데 유의해야 한다"고 부연했다.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북한은 재정과 금융이 일체화돼 은행에 대(對) 주민 서비스가 아예 없었다"며 "이번 연구를 통해 국가가 은행까지 통제하던 과거에서 차츰 탈피하는 정황을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