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1회 김수영문학상 수상자로 김석영 시인(41·사진)이 선정됐다. 수상작은 시 ‘정물처럼 앉아’ 외 50편이다. 심사위원단은 “시인의 치밀함과 인내심이 느껴졌으며, 시마다 스스로 던진 화두를 스스로 해결해 내는 매력적인 완결성을 지니고 있다”고 평했다. 상금은 1000만원이다.
2019년 김수영문학상을 받은 시인 권박이 두 번째 시집 《아름답습니까》(문학과지성사·사진)를 발표했다.수상작인 첫 시집 《이해할 차례이다》에서 권 시인은 소설 같기도 하고 논문이나 기사 같기도 한 실험시를 통해 현실의 문제를 치열하게 파고들었다. 이번 시집에선 보편의 미(美)나 정상으로 간주해온 규범을 단호하게 거부하고 “정말 이게 아름답습니까”라고 묻는다.‘아름다울 때도 있지. 아가의 무력한 발걸음처럼. 정오의 태양으로 생기는 무력함처럼. 있잖아. 여자는, 여성성은, 시는, 굳이 아름다울 필요가 없지 않을까? 그렇지만 너는 아름다울 필요가 있지 않을까? 아름답고 싶을 때 아름다우면 돼. 편견을 깨뜨리려는 싸움처럼 아름다웠으면 해. 안간힘을 다해 투쟁하는 인간이 되었으면 해. 지치지 않는 용기였으면 해. 사전에 새로 추가되는 윤리였으면 해.’ (‘누나, 부르면, 응, 답할게’ 中)시인은 아름다움이란 가치를 부정하지 않는다. 누군가가 정해놓고 강요하는 미의 기준을 부정할 뿐이다. 그는 “아름답고 싶을 때 아름다우면 돼”라며 아름다움에서도 주체적이고 능동적일 것을 강조한다. 그에게 시는 순수한 진공 상태 속에 보존된 아름다움을 담아내는 장르가 아니다. 부조리를 고발하고 폭로하는 장도 아니다. 세계를 공부하고 정리해 자기 언어로 재현하는 현장이다.이번 시집은 첫 시집의 확장 업그레이드판이다. 특유의 날카로움과 자유로움은 유지하면서도 섬세한 기획을 기반으로 여러 주제어가 다양하게 변주된다. 지적이고 전위적인 시들이지만 시원하게 잘 읽힌다. 절제된 감정 속에서 담담하게 한 행씩 읽어가다 보면 정수리가 저릴 만큼 현실적인 이야기에 문득 폭발력 있는 분노를 마주하게 된다.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
안태운 시인이 자신의 두 번째 시집 《산책하는 사람에게》(문학과지성사·사진)를 출간했다. 첫 시집 《감은 눈이 내 얼굴을》로 “단단하면서 독특한 문장으로 장면의 전환과 시적 도약을 일으킨다”는 호평을 받으며 2016년 35회 김수영문학상을 받은 지 4년 만이다.이번 시집의 특징 역시 장면의 전환을 통해 시어가 멈추지 않고 흐르듯 유동적으로 제호처럼 마치 산책하듯 시 속 세계를 거닌다는 점이다. 시 ‘더 깊은 숲으로’에선 ‘숲으로 들어갔어요…길이 없는 숲으로 더 들어가자 오솔길이 나왔습니다’라며 어떤 미지의 숲을 헤매는 장면을 보여준다. 그러면서 시 ‘계절 풍경’에선 ‘나는 어디에 있을까, 어디로 가야 할까’라며 자문하기도 한다.이렇듯 안 시인은 고정된 자아와 체계 밖으로 걸어나가 특정 장면들을 통해 일상의 이면을 돌아보는 경험을 하게 한다. 무엇보다 특정 시어나 시 속 상황에 안착하지 않고 시적 이미지들을 계속해 연결하며 어떤 하나의 흐름을 만들어 낸다. 시 ‘이국 정서’에선 ‘약속된 장소에 도착’할 즈음 어딘가로 다시 출발하면서 ‘어느 곳에도 체류하지 않는 배회의 상태’를 지속한다. 화자가 ‘나’와 ‘현재’라는 익숙한 시점에 머무르지 않게 함으로써 변화의 풍경을 더욱 분명하게 보여주는 대목이다.변화의 풍경을 통해 끊임없이 흘러가는 이 세계의 아름다움 가운데 잊을 수 없는 장면들을 끄집어냄으로써 안 시인은 읽는 이로 하여금 “어제의 풍경이 덧없이 변화해 지나가 버리더라도 그것이 내일 다시 볼 풍경으로 돌아오리라”는 믿음을 갖게 만든다.은정진 기자 silver@hankyung.com
올해 김수영문학상 수상자로 추계예술대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한 이기리 씨(26·사진)가 선정됐다. 김수영문학상을 주최하는 민음사는 이씨 작품인 ‘그 웃음을 나도 좋아해’ 외 55편을 올해 수상작으로 결정했다고 16일 발표했다. 이씨는 언론사 신춘문예나 문학출판사 추천 등을 통해 정식으로 문단에 등단하지 않은 시인 지망생이다. 올해로 39회를 맞이한 김수영문학상이 비등단자를 수상자로 선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이번 문학상 심사엔 191명이 지원해 총 여섯 작품이 본심에 진출했다. 이씨 작품인 ‘그 웃음을 나도 좋아해’ 외 55편은 개인의 내밀한 경험에서 출발해 과거의 상처를 망설임 없이 드러내고 마주하는 용기가 돋보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심사위원들은 “구체적인 장면 속에서 화자의 감정을 과장 없이 담담하고 정확하게 짚어내고 있었다”며 “평이한 듯한 진술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자신만의 내공과 고유한 정서적 결이 느껴진다. 앞으로의 가능성에 대한 믿음을 줬다”고 입을 모았다.심사를 맡은 김언 시인은 “어린 화자의 시선을 빌리면서도 자신의 어두운 지점을 담담하고도 정확하게 짚어내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게 읽혔다”고 말했다. 또 다른 심사위원인 박연준 시인은 “화자의 처지와 고통을 구체적으로 내몰듯 서술하면서도 시를 통해 감정 유희를 즐길 만큼 상상과 비유, 유머를 발산하는 모습에서 읽는 재미가 있었다”고 평가했다.이씨는 수상 소감으로 “시는 내 삶에 물방울들이 천천히 창 아래로 모이듯 다가왔고, 이제 내 세계가 언어로서 이 세계를 조금이나마 넓힌 기분”이라며 “그토록 바라고 바란 순간을 통과했지만 달라지지 않겠다. 시를 통해 사랑을 보듬고 부족한 사랑을 타인들을 위해 채워줄 것”이라고 말했다. 상금은 1000만원이며, 수상시집은 12월께 출간된다.은정진 기자 silv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