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이민·반유럽 노선으로 입지 다져…포퓰리즘 일변도 정책 펴긴 어려울듯

국가를 운영할 역량을 갖추고 있다는 자신감을 드러낸 표현이지만 어떤 준비된 총리도 헤쳐나가기 어려울 정도로 멜로니 총리 앞에는 난제들이 가득하다.
이탈리아 일간 '코리에레 델라 세라'는 에너지 가격 급등, 경기 침체, 우크라이나 전쟁, 친러시아 성향의 연정 파트너 등의 과제를 열거하며 "멜로니 총리가 걸어갈 길은 꽃길이 아니라 지뢰밭의 연속"이라고 지적했다.
1977년 이탈리아 로마에서 태어난 멜로니는 15세에 '파시즘의 창시자' 베니토 무솔리니 추종자들에 의해 결성된 '이탈리아사회운동'(MSI) 청년 조직에 가입하며 정치를 시작했다.
19세 때 외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선 "무솔리니가 한 모든 것은 이탈리아를 위한 것이었다"며 무솔리니를 적극적으로 옹호하기도 했다.
멜로니는 2008년 31세의 나이로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내각의 청년부 장관에 임명됐다.
이탈리아 정치 역사상 최연소 장관 타이틀을 달았다.
2012년에는 MSI를 계승한 이탈리아형제들(FdI)을 창당해 2014년부터 대표직을 맡았다.
그에게 '여자 무솔리니'라는 수식어가 붙는 이유다.
멜로니는 최근 "파시즘은 지나간 역사"라고 단언했지만, MSI가 사용한 삼색 불꽃 로고를 FdI 로고에서도 계속 사용하는 등 파시즘의 잔재는 여전히 남아 있다.

남성 정치인과 토론에서 오히려 상대를 압도할 정도로 언변과 카리스마가 뛰어나고, 청중의 마음을 사로잡는 연설가로 인기를 얻었다.
멜로니는 지난해 2월 마리오 드라기 총리가 거국 내각을 구성할 당시 유일한 야당으로 남으며 또 한 번 주목을 받았다.
이해관계에 따라 가볍게 말을 뒤집고, 약속을 지키지 않는 정치인들에게 질린 이탈리아 유권자들은 쉽게 타협하지 않는 멜로니를 마지막 남은 대안으로 인식했다.
드라기 내각이 7월 말 붕괴하며 지난달 25일 치러진 조기 총선에서 멜로니는 반정부 표를 대거 흡수하며 지지율을 끌어올렸고, 경제 위기에서 촉발된 불안감과 좌절감을 파고들어 마침내 정권을 잡았다.
멜로니 총리는 '강한 이탈리아'를 표방하는 극우 정치인으로, 반이민·반유럽통합 등을 내세워 정치적 입지를 다져온 인물이다.
그는 과거 이탈리아가 유럽연합(EU)에서 탈퇴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당장은 EU와 다른 노선을 취하기 어렵다.
EU가 2026년까지 이탈리아에 제공하는 코로나19 구호기금 1천915억유로(약 264조원)를 받으려면 협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악화 일로를 걷는 이탈리아 경제 상황은 멜로니에게 가장 큰 과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 이탈리아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부채 비율은 150%에 달한다.
설상가상으로 국제통화기금(IMF)은 내년 이탈리아 경제가 0.2% 역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드라기 내각은 경기 방어를 위해 이미 660억 유로(약 93조원)를 지출했다.
영국의 리즈 트러스 총리가 경제논리를 무시한 감세정책의 역풍을 맞아 영국 역사상 최단명 총리라는 오명을 남기게 된 데서 보듯 경기 침체로 재정의 운신 폭이 좁아지면 포퓰리즘 일변도의 정책을 펴기는 어려워진다.
멜로니 총리는 정부 재정을 책임 있게 관리하면서 동시에 기업과 가계가 최악의 에너지 위기를 겪지 않도록 과감한 재정 지출과 대대적인 감세를 펴겠다고 공약했지만 두 약속을 함께 지키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민생 대책을 둘러싸고 지지자들 사이에서 불만이 쌓이고, 대표적인 친러시아·친푸틴 인사로 꼽히는 살비니, 베를루스코니 등 연정의 주요 파트너들이 에너지 위기를 이유로 전쟁 지원에서 발을 빼자고 주장할 경우 연정이 극심한 내홍에 휩싸일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무엇보다 멜로니 총리는 청년부 장관을 지낸 것을 제외하면 국정 운영 경험이 부족하고 정책 수행 능력을 검증받지 못했다.
중첩된 위기 속에 국가 운영을 책임지게 된 멜로니 총리에게 기대보다는 우려의 시선이 커지는 이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