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원 "안보실 '자진월북' 방침…국방부, '월북' 뒷받침하려 미확인 내용 포함"
文 "시신 소각 발표 너무 단정적이다.

재분석하라" 지시 사실도 공개
지난 2020년 9월 북한군 피격으로 숨진 해양수산부 공무원 고(故) 이대준 씨는 당시 어떤 과정을 거쳐 당국에 의해 '자진 월북자'로 단정 지어졌을까.

전임 문재인 정부에서 청와대 국가안보실을 중심으로 이같이 밀어붙인 것으로 보인다는 게 지난 6월 17일부터 57일간 이 사건을 감사한 감사원 판단이다.

감사원은 13일 언론에 배포한 '서해 공무원 피격' 감사 보도자료에서 "월북이라고 단정할 수 없는 '월북 의사 표명' 첩보와 부정확한 사실을 근거로 '자진 월북'을 속단(速斷)했다"고 밝혔다.

이씨 시신 소각과 관련한 국방부 발표가 '추가 조사가 필요하다'고 바뀐 배경에는 "국방부 발표가 너무 단정적이었다.

재분석하라"는 문재인 전 대통령의 지시가 있었다는 것도 이번에 확인됐다.

◇ 감사원 "9월 23일 관계장관회의가 중대 분기점"
감사원은 "안보실은 (국방부 등) 이들 기관이 '자진 월북'으로 일관되게(one-voice) 대응하도록 방침을 제시했다"고 지적했다.

' 이러한 방침에 따라 당국이 자진 월북 의도가 낮았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정보는 분석·검토하지 않았고, 월북 결론과 배치되는 사실은 분석에서 의도적으로 제외했다고 봤다.

2020년 9월 21일 이씨가 실종된 직후만 해도 월북 가능성에 더 무게가 실린 분위기는 아니었던 것으로 감사원은 판단했다.

국방부는 이날 오후 3시25분 합참으로부터 조류 방향(북→남)과 어선 조업 시기 등을 이유로 월북 가능성이 작다는 보고를 받았다.

다음 날인 22일 오후 6시36분 안보실이 대통령에게 첫 서면보고한 보고서에도 "해상 추락으로 추정돼 수색 중"이라는 내용이 포함됐다.

그 와중에 이씨의 '월북 의사 표명 첩보'가 입수됐고 오후 7시40분 국방부 장관에게 처음 보고됐다.

해당 첩보는 약 5시간 뒤인 다음날 23일 오전 1시 관계장관회의에서 공유됐다.

그 사이 이씨는 북한군에 피격돼 숨졌고 시신은 소각됐다.

안보실은 23일 오전 8시30분 이씨 피살·소각 내용을 포함한 대통령 첫 대면보고를 거쳐 오전 10시 관계장관회의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이씨가 자진 월북한 것으로 보인다'는 국방부(합참) 초도판단 보고가 이뤄졌다.

당시 국방부 장관은 안보실 측이 이 회의에서 군이 파악한 첩보 외 '타 승선원과 달리 혼자 구명조끼 착용', 'CCTV 사각지대에서 신발 발견' 등 다른 월북 근거도 알려줬다고 진술했다고 감사원은 전했다.

감사원 관계자는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23일 오전 10시 관계장관회의가 ('자진 월북'으로 방향을 잡은) 중대 분기점이 된 것으로 본다"고 했다.

안보실은 초도판단(자진 월북) 내용을 기초로 종합분석 결과를 작성·보고하도록 국방부에 지시했다.

해경에도 '선박 CCTV에서 신발 발견', '지방에서(가정불화) 혼자 거주' 등 2가지 팩트를 알리라는 취지의 언론 대응 지침을 하달했다.

◇ "국방부, 미확인 내용 포함…해경은 짜깁기 심리분석·실험 결과 왜곡"
해경은 안보실 방침에 맞춰 움직였다.

그 과정에서 확인되지 않은 증거를 사용하거나 기존증거 은폐, 실험 결과 왜곡, 사건과 관련 없는 사생활 공개 등을 한 혐의가 있다고 감사원은 봤다.

9월 29일 2차 중간수사 결과 발표를 앞두고 내부에서 월북 판단으로 단정할 수 없다는 취지의 문제 제기가 있었음에도 발표는 '월북한 것으로 판단한다'는 내용으로 이뤄졌다.

해경 관계자는 2차 발표 초안을 작성하는 과정에서 청장으로부터 '다른 가능성은 말이 안 된다.

월북이 맞다'는 취지의 말을 들었다고 진술했다.

이씨가 착용한 구명조끼에 한자(漢字)가 쓰여 있었다는 자료를 보고받은 해경청장이 "나는 안 본 거로 할게"라는 발언을 했다는 진술도 나왔다고 감사원은 전했다.

한국산 구명조끼가 아닐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이씨가 근무했던 무궁화 10호에 실린 구명조끼를 입고 북측 해역까지 이동이 가능하다며 월북설을 주장한 당국의 설명과 대치되는 셈이다.

'실험 결과 왜곡'과 '임의 짜깁기된 심리분석'도 이뤄졌다.

국립해양조사원(해경) 등 4개 분석기관의 표류 예측 분석·실험 결과 북측 해역으로의 자연 표류 가능성이 제기되자, 분석기관에 이를 제외한 채 결과를 제출하도록 했다고 감사원은 지적했다.

또 범죄심리 전문가 7명을 상대로 이씨와 관련해 부정적 이미지를 줄 수 있는 정보만을 제공하며 자문을 요청했고 이들 중 2명만 월북 가능성을 언급했음에도, 여러 전문가 의견을 짜깁기해 '정신적 공황 상태에서 현실 도피를 위해 월북했다'고 결론내렸다.

감사원은 또한 당시 국방부가 월북 판단 근거로 내세운 ▲ 혼자 구명조끼 착용 ▲ CCTV 사각 지역서 슬리퍼 발견 ▲ 발견 당시 소형 부유물 의지 ▲ 월북 의사 표명 모두 근거가 충분치 않다고 봤다.

특히 북한 측에 월북 의사를 표명하는 과정과 관련, 감사원은 "이씨는 최초에는 월북 의사를 언급하지 않거나 왜 들어왔는지에 대한 답변을 회피하다가 거듭된 질문에 월북 의사를 표명했다"며 이는 통상적인 자진 월북 상황과 다르다고 지적했다.

안보실은 24일 오전 8시 관계장관회의에서 '자진 월북 가능성이 높다'는 국방부 종합분석 결과를 다시 보고받고서 월북 여부에 대한 해경 수사가 진행 중인데도 국방부에 언론 발표를 지시했다.

이튿날인 25일 오후 2시 북측 대남통지문 접수 후 국방부의 정보 재확인 과정에서도 "자진 월북 결론에 맞추기 위해 기존과 같이 국방부 등의 자료에 없어 사실관계가 확인되지 않는 내용을 포함했다"고 감사원은 전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