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 곤란 신고자에 "숫자버튼 눌러달라"…'보이는 112' 효과
"피자 갖다주세요" 엉뚱한 전화에도 범죄 인지하고 신속 출동

신고자가 사건 내용이나 발생 위치 등을 말하지 않고 전화를 끊는 이른바 '불완전 신고'를 받은 112 신고 접수요원이 신속히 경찰관을 출동시켜 사건을 해결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9일 경찰에 따르면 가정폭력 사건 등의 피해자가 가해자와 한 공간에 있어 112 신고를 하기 어려운 경우 음성 대화 없이도 상황을 전달할 수 있게 하는 112시스템을 올해 초 도입했다.

과거 112 신고 접수요원들은 아무런 말을 하지 않는 신고자에게 "경찰의 도움이 필요하면 아무 번호를 누르거나 수화기를 두드려 달라"는 등으로 긴급 상황 여부를 확인했는데, 경찰이 이 같은 신고를 새로운 신고 방식으로 공식화한 것이다.

112 신고 접수요원은 질문에 대답하기 곤란해하는 신고자에게 숫자 버튼을 누르도록 유도하고, 이에 응한 경우 '보이는 112' URL을 보낸다.

신고자가 이 링크를 클릭하면 휴대전화를 통해 위치 정보와 현장 상황 영상 등이 112 상황실로 전송되는 방식이다.

이 시스템을 통해 위험한 처지에 놓인 신고자를 신속히 구조한 사례가 최근 잇따르고 있다.

경기남부경찰청 112 상황실 소속 오지원 경장은 지난달 14일 새벽 112에 전화를 건 한 신고자가 아무런 말을 하지 못하자 위험한 상황을 직감, '보이는 112'를 가동했다.

그 결과 가정폭력 현장에서 신고자의 모친이 피해를 보고 있는 사실을 파악하고 재빠르게 경찰관을 출동시켜 피해자를 안전하게 구조했다.

다음날 오후에는 이준호 경위가 "아내가 자해하려 한다"는 한 남성의 신고를 받았으나, 긴박한 상황 탓에 신고자가 제대로 대답할 수 없자 '보이는 112' 신고를 안내했다.

그는 112 상황실로 전송된 현장 영상을 통해 신고자의 아내가 흉기를 들고 남편과 대치 중인 모습을 확인, 신속하게 대처해 요구조자의 입원 조치에 기여했다.

경찰은 112 신고 접수요원에 대한 지속적인 교육 및 실태 점검을 통해 대응 역량을 매년 강화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지난 2월 18일 화성시에서 한 신고자가 다급한 목소리로 자신의 주소를 말한 뒤 "불고기피자 라지 사이즈를 갖다주세요"라고 말하자 위급 상황을 인지한 112 신고 접수요원이 신속히 경찰관을 출동시켜 가정폭력 피해자를 구조한 일이 있었다.

당시 112 신고 접수요원은 피자 배달업체 직원인 것처럼 "정확한 주소를 확인할게요"라고 대답하면서 신고자 위치를 파악하는 등 침착하게 대응해 사건을 해결했다.

지난 7월 1일 안성에서는 "택시 승객이 보이스피싱 수거책인 것 같다"고 112에 신고한 택시 기사가 위치 파악 등을 위한 경찰의 전화가 걸려오자 센스있는 답변으로 위치를 알린 일도 있었다.

당시 택시기사는 차종과 색상 등을 묻는 말이 나오자 평소 알고 지내던 동생을 대하듯 "아우님, 차를 사려면 ○○○로 사. 하얀색이 제일 좋아"라고 답했고, 112 신고 접수요원은 이를 잽싸게 알아듣고 상황을 전파해 피의자를 검거하는 데에 공을 세웠다.

경기남부경찰청 112 상황실에 접수되는 신고는 하루 평균 9천여 건으로 전국 최다 수준이다.

하루를 주야간으로 나눠 2개팀(팀당 35명 가량)이 근무하는 점을 고려하면, 1명이 100건 이상의 신고를 접수하는 셈이지만, 112 신고 접수요원들은 단 1건의 신고도 흘려듣지 않고 있다는 게 경찰의 설명이다.

박기성 경기남부청 112 관리팀장은 "신고 접수 방식과 대응 매뉴얼이 날로 진화하면서 각 요원의 역량이 강화하고 있다"며 "예전과 달리 장난 전화가 거의 사라지는 등 시민의식이 높아진 것도 112 신고처리 수준을 향상한 데에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