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오토모티브 P7-B 박스 트럭. /리오토모티브 유튜브
리오토모티브 P7-B 박스 트럭. /리오토모티브 유튜브
2008년 이스라엘에서 포도 농사를 짓는 글라드 울프는 골반이 부러지는 사고를 당했다. 휠체어 신세를 져야 하는 상태에서도 포도를 키우고자 했지만 마음처럼 휠체어가 움직이지 않았다. 포도밭이 흙투성이어서 바퀴가 제대로 구르지 못했다. 마냥 주저앉을 수 없었던 그는 바퀴를 새로 개선해 만들었다. 거친 흙밭에서 타이어 펑크를 없애기 위해 통고무를 썼다. 탄성이 떨어져 승차감에 문제가 발생하자 ‘휠 스포크’에 충격 흡수 장치를 넣었다. 공기식 타이어의 쿠션 기능을 스포크 내 ‘쇼크 업소버’로 대체한 것이다.

이스라엘 히브리대에서 경제학과 경영학을 전공한 다니엘 바렐은 울프의 휠체어를 눈여겨봤다. 그는 울프의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2011년 충격을 덜 주는 바퀴를 제조하는 업체인 소프트휠을 설립하고, 휠체어와 자전거에 적용할 수 있는 신제품 ‘플루언트 휠’을 출시했다. 이 장치는 휠을 지지하는 세 개의 스포크 안에 압축 실린더를 배치해 충격을 흡수했다. 자동차 기업들이 이 제품에 관심을 보였고, 다니엘은 바퀴를 다는 모든 물체에 이 휠을 적용했다.

이후 사세를 키우며 그는 2013년 전기차업체 리오토모티브를 창업했다. 자동차 바퀴에 각각 달린 충격 흡수장치인 쇼크 업소버를 바퀴에 넣고, 차량 내부에 배터리를 장착하면 평평한 공간이 만들어진다는 점에 주목했다. 이 공간 위에 주방을 얹으면 이동 가능한 식당인 ‘푸드 모빌리티’가 되고, 대형 스크린을 올리면 ‘무비 모빌리티’가 되는 셈이다. 최근 주목받고 있는 목적기반모빌리티(PBV)를 미리 준비한 것이다.

리오토모티브의 핵심 기술인 ‘리 코너(ree corner)’로 불리는 통합 모듈이다. 제동, 스티어링, 모터 및 감속기 등을 휠과 결합해 공간을 자유롭게 쓸 수 있도록 했다. 이 장치는 자율주행차에 꼭 필요한 기술로도 꼽힌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프로스트앤드설리번이 지난해 ‘올해의 전기차 플랫폼’으로 리오토모티브를 선정한 이유다.

최근 리오토모티브는 2t을 실을 수 있는 전기 화물 밴을 공개했다. 각 바퀴에 100㎾급 모터를 장착해 400㎾의 힘을 내며, 1회 충전 시 241㎞ 주행이 가능하다. 최고 시속은 120㎞다. 아직 배터리 용량을 발표하지 않았지만 중·단거리 배송 전용 제품이라는 점을 적극 내세우고 있다.

물류용 차량은 상대적으로 주행거리가 길어 탄소도 적지 않게 배출한다. 이 점을 노리고 물류 전용 다목적 전기차에 먼저 뛰어들었다. 리오토모티브는 글로벌 완성차 업체가 잇따라 물류용 전기 모빌리티 개발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점을 파고들어 몇몇 완성차 업체와의 협업도 이끌어냈다.

농부의 집념서 비롯된 '물류용 전기차'
휠체어에 앉아 농사를 짓겠다는 이스라엘 시골 농부의 의지가 물류용 전기차의 밑거름이 됐다. 모빌리티는 포기하지 않는 인간의 의지로 발전해왔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권용주 오토타임즈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