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들어 한국 첫 로켓 누리호와 첫 달 탐사선 다누리가 잇달아 우주로 향했다. 우주는 새까맣게 보인다. 여기서 무수한 항성(별)이 탄생하고 사라진다. 태양도 별 중에 하나다. 지구, 달 등 행성도 우주에서 나고 자란다. 우주의 26.8%는 암흑물질(dark matter)로 구성돼 있다. 별들의 운동에 지대한 영향을 주는 암흑물질은 ‘존재한다’는 사실과 분포 형상이 알려졌을 뿐, 어떤 성분으로 돼 있는지 아직 전혀 알려진 바 없다. 노벨물리학상 단골 주제인 중성미자도 암흑물질과 밀접한 관계가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지하 1100m 어둠 속에서 '우주 암흑물질의 비밀' 푼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직할 연구기관인 기초과학연구원(IBS) 지하실험연구단이 암흑물질을 규명하기 위해 나섰다. 성공하면 과학 분야 ‘한국인 최초 노벨상 수상’으로 이어질 수도 있는 연구다. IBS 관계자는 11일 “다음달 강원도에 암흑물질의 정체를 밝힐 지하 연구시설을 준공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국내 유일한 철광산인 한덕철광이 있는 강원 정선군 신동읍 예미리 지하 1100m에 들어설 이 연구시설 이름은 지명을 따 ‘예미랩’으로 지었다.

예미랩의 임무는 암흑물질 구성 유력 후보인 ‘윔프’ 입자의 존재를 밝히는 것이다. 윔프는 ‘약하게 상호작용하는 무거운 입자’란 뜻이다. 한국이 낳은 천재 과학자 이휘소 박사의 1977년 유작 논문에서 개념이 처음 제시됐다. 현재까지 밝혀진 바에 따르면 윔프의 속도는 여름 기준 무려 초속 250㎞(마하 735.3)에 달한다. 윔프의 존재를 포착했다고 주장하는 실험은 현재까지 이탈리아 그랑사소 입자물리연구소 다마 연구그룹이 진행한 ‘다마 실험’이 유일하다.

지구로 날아온 윔프는 지하 연구시설 검출기 내 특수하게 만든 결정과 충돌하는 과정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윔프가 결정 원자핵과 충돌하면 결정에서 광자(빛)가 방출되는데, 이 신호를 포착하는 것이다. 검출기는 뮤온 등 중성미자나 우주 방사선 영향(노이즈)을 줄이기 위한 ‘차폐’를 얼마나 잘하느냐가 관건이다. IBS 지하실험연구단은 강원 양양 양수발전소 지하 700m 실험실에서 다마 실험 결과를 반박하는 논문을 내 2018년 말 세계 3대 학술지 ‘네이처’에 실었다. 이 논문 작성엔 서울대 고려대 등 국내 대학과 미국 예일대 일리노이대, 영국 셰필드대 등 세계 15개 기관이 참여했다. 예미랩은 이런 암흑물질 연구에 속도를 더할 것으로 기대된다.

예미랩의 또 다른 중요한 임무는 ‘이중베타 붕괴 실험’이다. 중성미자와 중성미자의 반입자(반대 성질을 가진 입자)인 반중성미자가 ‘완전히 다른 입자냐, 아니면 같은 입자의 또 다른 얼굴이냐’를 규명하는 것이다. 물리학계의 80년 난제인 이 문제를 푼다면 노벨물리학상 수상으로 이어질 것으로 학계는 보고 있다. 현재 IBS 지하실험연구단을 비롯해 세계 20여 개 그룹이 암흑물질 연구와 이중베타 붕괴 실험을 지하에서 하고 있다.

예미랩 건설엔 350억원이 들었다. 70여 명의 연구인력을 둔 IBS 지하실험연구단은 매년 85억원 안팎의 예산을 지원받고 있다. 김영덕 IBS 지하실험연구단장(세종대 교수)은 “기초과학은 자연의 법칙을 연구하는 것인데, 암흑물질은 인류가 가장 모르고 있는 자연의 법칙”이라며 “우주의 탄생과 끝, 별의 흥망성쇠를 좌우하는 게 암흑물질인 만큼 더 깊은 연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지하실험연구단은 지난해 IBS 30여 개 연구단 가운데 ‘최우수’ 평가를 받았다.

올해로 문을 연 지 10년째를 맞은 IBS는 세계적 연구 성과를 시나브로 축적하고 있다. 지난해 피인용 상위 1% 논문 비율, 논문당 평균 인용 횟수 등 지표에서 미국 로런스버클리국립연구소와 아르곤국립연구소, 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 일본 이화학연구소, 프랑스 국립과학원 등 세계적 연구기관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한국에서 ‘노벨상 수상에 근접한 과학자’로 꼽히는 5명 가운데 3명(유룡 KAIST 명예교수, 현택환 서울대 교수)이 IBS에서 연구했거나 연구 중이다.

이해성 기자 i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