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 사로잡은 저항과 전복의 메시지…다큐 '뱅크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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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0월 영국 런던의 소더비 경매장. 뱅크시의 작품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진 '풍선과 소녀'가 경매에 나왔다.
경매사가 100만 파운드(약 15억9천만 원) 넘는 가격에 낙찰을 알리는 의사봉을 두드리는 순간 액자 속 그림이 산산조각 났다.
뱅크시는 사전에 작품이 스스로 파쇄되도록 액자를 제작해 경매에 부쳤다.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예술가가 예술제도에 대한 조롱과 전복을 핵심 테마로 삼고, 그럴수록 예술계가 더욱 열광하는 상황은 분명 아이러니다.
그러나 뱅크시는 그래피티를 하던 시절부터 간직한 저항정신을 극적으로 알릴 수 있는 위치에 섰다는 점만으로도 성공한 아티스트다.
'뱅크시'는 얼굴 없는 아티스트를 정체성으로 삼는 뱅크시의 예술세계를 조명한 다큐멘터리다.
뱅크시의 모습이 여러 차례 등장하지만 얼굴은 모자이크 처리됐다.
호사가들처럼 뱅크시가 도대체 누구인지, 개인인지 집단인지 추적하는 대신 그가 남긴 작품과 동료 그래피티 아티스트들의 말을 통해 그의 예술세계를 파고 들어간다.
뱅크시는 1974년 영국 브리스톨에서 나고 자랐다.
영화는 우선 그의 예술세계를 형성한 역사·사회적 배경을 들여다본다.
대처리즘의 그늘이 드리웠던 1980년대 브리스톨은 영국의 다른 소도시들처럼 쇠락하고 있었다.
항구도시 브리스톨은 뉴욕에서 시작한 그래피티와 힙합의 저항문화를 흡수했다.
매시브 어택(Massive Attack)과 포티쉐드(Portishead) 같은 우울한 분위기의 트립합 팀들이 브리스톨에서 탄생했다.
매시브 어택의 멤버 로버트 델 나자가 뱅크시라는 추측이 아직도 나온다.
경찰을 동원해 레이브 파티를 진압하는 보수적 분위기에서 그래피티 아티스트들이 자기 이름을 형상화하는 수준을 넘어 저항의 메시지를 그린 건 당연한 일이었다.
뱅크시는 쥐와 어린아이 등 약하지만 글복하지 않는 이미지로 단연 두각을 나타냈다.
2005년에는 팔레스타인 분리 장벽에 사다리와 천국의 이미지를 그리며 세계관을 넓혔다.
대영박물관과 루브르박물관 등에서 감행한 '도둑 전시'는 제도권 예술의 허영과 자기기만에 대한 비판이었다.
뱅크시는 대영박물관과 루브르박물관·뉴욕현대미술관 등지에 그럴듯한 작품을 몰래 걸었는데 관람객들은 가짜라는 사실을 알아채지 못했다.
보수당 장기집권이 끝나고 '쿨 브리타니아' 시대가 도래하자 뱅크시의 주가는 더 뛰었다.
그의 작품은 반전시위 피켓에 딱 들어맞았다.
영화는 저항정신으로 출발했다가 제도권으로 더 깊숙이 들어간 'yBa'(young British artists)의 대표주자 데미안 허스트를 뱅크시와 은근히 비교하기도 한다.
뱅크시가 4년 전 파쇄한 '풍선과 소녀'는 원래 대량생산해 250파운드(약 39만 원)에 팔던 그림이었다.
이제는 뱅크시가 작업한 담벼락도 거래된다.
오늘날 그가 조소하는 제도권의 어느 유명 예술가보다 비싼 가격에 뱅크시의 작품이 팔려나가는 모순은 여전히 남는다.
영화는 뱅크시의 작품가격이 오를수록 '대체품' 수요가 늘어 유사한 작업을 하는 다른 아티스트들의 사정이 나아진다고 주장한다.
동료들이 말하는 '뱅크시 효과'다.
11일 개봉. 112분. 전체 관람가.
/연합뉴스
경매사가 100만 파운드(약 15억9천만 원) 넘는 가격에 낙찰을 알리는 의사봉을 두드리는 순간 액자 속 그림이 산산조각 났다.
뱅크시는 사전에 작품이 스스로 파쇄되도록 액자를 제작해 경매에 부쳤다.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예술가가 예술제도에 대한 조롱과 전복을 핵심 테마로 삼고, 그럴수록 예술계가 더욱 열광하는 상황은 분명 아이러니다.
그러나 뱅크시는 그래피티를 하던 시절부터 간직한 저항정신을 극적으로 알릴 수 있는 위치에 섰다는 점만으로도 성공한 아티스트다.
'뱅크시'는 얼굴 없는 아티스트를 정체성으로 삼는 뱅크시의 예술세계를 조명한 다큐멘터리다.
뱅크시의 모습이 여러 차례 등장하지만 얼굴은 모자이크 처리됐다.
호사가들처럼 뱅크시가 도대체 누구인지, 개인인지 집단인지 추적하는 대신 그가 남긴 작품과 동료 그래피티 아티스트들의 말을 통해 그의 예술세계를 파고 들어간다.
뱅크시는 1974년 영국 브리스톨에서 나고 자랐다.
영화는 우선 그의 예술세계를 형성한 역사·사회적 배경을 들여다본다.
대처리즘의 그늘이 드리웠던 1980년대 브리스톨은 영국의 다른 소도시들처럼 쇠락하고 있었다.
항구도시 브리스톨은 뉴욕에서 시작한 그래피티와 힙합의 저항문화를 흡수했다.
매시브 어택(Massive Attack)과 포티쉐드(Portishead) 같은 우울한 분위기의 트립합 팀들이 브리스톨에서 탄생했다.
매시브 어택의 멤버 로버트 델 나자가 뱅크시라는 추측이 아직도 나온다.
경찰을 동원해 레이브 파티를 진압하는 보수적 분위기에서 그래피티 아티스트들이 자기 이름을 형상화하는 수준을 넘어 저항의 메시지를 그린 건 당연한 일이었다.
뱅크시는 쥐와 어린아이 등 약하지만 글복하지 않는 이미지로 단연 두각을 나타냈다.
2005년에는 팔레스타인 분리 장벽에 사다리와 천국의 이미지를 그리며 세계관을 넓혔다.
대영박물관과 루브르박물관 등에서 감행한 '도둑 전시'는 제도권 예술의 허영과 자기기만에 대한 비판이었다.
뱅크시는 대영박물관과 루브르박물관·뉴욕현대미술관 등지에 그럴듯한 작품을 몰래 걸었는데 관람객들은 가짜라는 사실을 알아채지 못했다.
보수당 장기집권이 끝나고 '쿨 브리타니아' 시대가 도래하자 뱅크시의 주가는 더 뛰었다.
그의 작품은 반전시위 피켓에 딱 들어맞았다.
영화는 저항정신으로 출발했다가 제도권으로 더 깊숙이 들어간 'yBa'(young British artists)의 대표주자 데미안 허스트를 뱅크시와 은근히 비교하기도 한다.
뱅크시가 4년 전 파쇄한 '풍선과 소녀'는 원래 대량생산해 250파운드(약 39만 원)에 팔던 그림이었다.
이제는 뱅크시가 작업한 담벼락도 거래된다.
오늘날 그가 조소하는 제도권의 어느 유명 예술가보다 비싼 가격에 뱅크시의 작품이 팔려나가는 모순은 여전히 남는다.
영화는 뱅크시의 작품가격이 오를수록 '대체품' 수요가 늘어 유사한 작업을 하는 다른 아티스트들의 사정이 나아진다고 주장한다.
동료들이 말하는 '뱅크시 효과'다.
11일 개봉. 112분. 전체 관람가.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