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로 응해도 몰라…軍, 취재 들어가자 뒤늦게 중단 "비밀번호 설정할 것"
어처구니 없는 軍성폭력 실태조사…일반인도 아무나 참여 가능
국방부가 군대 성희롱과 성폭력 실태를 파악하고 예방·개선 방안을 찾겠다며 올해부터 시행하는 '군 성폭력 실태조사'에 참여자 제한을 걸어두지 않았다가 뒤늦게 조사를 중단했다.

4일 군에 따르면 국방부는 지난 6월부터 '군 성폭력 실태조사'를 온라인으로 시행 중이다.

군인은 일과시간 중 PC나 스마트폰으로 개별 접속해 참여할 수 있다.

국방부는 "조사 과정에서 일절 개인정보를 수집하지 않고 응답 결과로 인한 어떠한 불이익도 발생하지 않는다"고 조사 안내문에 밝혔는데, 문제는 응답자가 군인인지, 이미 참여하지는 않았는지 확인하는 절차조차 없었다는 점이다.

실제로 기자가 전날 공개된 조사 웹페이지에 접속해 조사에 참여해보니 모든 문항에 응답을 마치기까지 군인이 아닌 사람을 걸러내는 장치가 전무했다.

출생연도, 소속 군, 숫자 코드로 표시한 소속 부대, 현 계급, 입대 시기 등에 대한 질문이 있기는 하나 임의로 입력해도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데 지장이 없었다.

일반인의 조사 참여뿐만 아니라 이미 참여했던 군인이 중복으로 응답할 가능성도 있는 셈이다.

한 통계 관련 전문가는 "군의 성폭력 실태를 조사한다면서 군인이 아닌 응답자가 참여할 수 있도록 해 두면 당연히 결과가 왜곡된다"며 "온라인 진행 역시 참여자의 무성의한 응답을 유발할 수 있는 만큼 적절한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현재 조사 사이트에는 "온라인 조사 시스템 정비 문제로 조사가 일시 중단됐다"며 "정비 완료 시 부대 조사 담당자에게 전파하고 조사가 재개될 예정"이라는 공지가 올라왔다.

국방부는 "인트라넷으로 진행하려고 했으나 (용역을 준) 외부 통계 전문 업체로 자료를 옮기는 데 애로가 있는 데다가 응답자 편의성도 고려하느라 인터넷에서 할 수 있도록 했던 것"이라고 해명했다.

이어 "취재 이후 업체에 외부 인원과 중복 인원 대책을 왜 안 세웠느냐고 항의했고, 비밀번호 설정 등의 작업을 위해 조사를 일시 중단했다"고 밝혔다.

군 성폭력 실태조사는 2020∼2024 제1차 여성폭력방지정책 기본계획에 따른 2022년 시행계획에 세부과제로 포함됐으며 올해부터 매년 시행하기로 했다.

조사는 응답자에게 지휘관·상급자의 성희롱·성폭력 근절 노력, 성희롱·성폭력 사건의 비밀 보장 여부, 피해자에 대한 보호조치와 지원 여부 등을 묻는다.

또 성폭력 예방대응담당관, 각 군 성고충예방대응센터, 고충심의위원회 등 군이 운영하는 성희롱·성폭력 예방 및 피해자 보호·지원 조치를 알고 있는지, 안다면 제대로 운영되는지 등을 질문한다.

이어 최근 1년간의 성희롱·성폭행 피해 및 가해 또는 목격 경험을 물어보는 방식으로 짜였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