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깨어있는 시간 2분의 1을 직장에서 보낸다. 직장은 ‘밥벌이 수단’을 넘어선다. 인생의 최대 활동 공간이다. 누가 어떤 사람인지를 회사 명함이 말해 준다. 그래서 직장 생활을 다루는 책에는 때로 인생의 본질이나 시대정신까지도 담겨 있다. 직장인 에세이가 최근 잇달아 출간됐다. 다니는 회사는 모두 다르지만 가슴 뛰는 성취감과 뭉클했던 기억들 그리고 ‘처세’의 고민들은 한결같았다.

[책마을] 에세이에 담긴 '신인류 직장인'의 애환
<딴 생각>(박찬휘 지음, 싱긋)은 페라리, 메르세데스-벤츠, 아우디 등 유럽 자동차 회사에서 활동해온 박찬휘 디자이너의 일상 기록이다. 그는 최근 아우디가 출시한 전기차 Q4 이트론을 디자인하기도 했다.

저자는 영국 유학부터 시작해 오랜 시간 유럽에서 타지 생활을 해왔다. 그는 ‘이방인’이라는 약점이 남들과 다른 시선으로 자신의 강점이 됐다고 말한다. 문화·언어적 어려움은 도리어 축복이다. 남들이 당연하게 여기는 것에 대해 ‘딴 생각’을 하는 건 디자이너에게 상상력의 원천이 되기 때문이다.

책에는 일상 생활에서 얻은 디자인 철학을 비롯해 유럽 제조업과 예술 정신에 대한 이야기 등이 담겨 있다. 인공지능(AI)이 일터 곳곳에서 직장인을 대체하는 시대, ‘기발하고 신선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디자이너의 조언은 다른 직종의 직장인들에게 공감을 일으킨다.

[책마을] 에세이에 담긴 '신인류 직장인'의 애환
<꽃비 내리는 날 다시 만나>(허은주 지음, 수오서재)는 시골의 수의사가 동물을 진료하면서 겪은 일과 느낀 바를 적은 책이다. 저자는 생명을 돌보는 일을 하며 자연스레 생과 사, 다른 생명들과 한 세계에서 공존하는 방법에 대해 고민하게 됐다.

저자의 시선은 반려동물을 치료하고 잘 떠나보내는 일에서 공장식 사육에 대한 문제 의식까지 뻗어나간다. “누구라도 자신이 입양하고 함께 살 작은 강아지가 개 농장에서 겪어야 했던 일을 알게 된다면 펫숍에서 동물을 구입하지 못할 것이다. 가벼운 마음으로 숍에서 예쁜 강아지, 고양이 한 마리를 사는 건 열악한 농장에서 살아가야 할 또 한 마리의 동물을 만들어내는 일이기 때문이다.”

[책마을] 에세이에 담긴 '신인류 직장인'의 애환
<언젠간 잘리고, 회사는 망하고, 우리는 죽는다!>(이동수 지음, RHK)의 부제는 ‘신인류 직장인의 해방 일지’. 올해 마흔이 된 저자 이동수 씨의 직급은 대리다. 그의 동기, 후배까지도 과·차장을 달았지만 그가 여전히 ‘이대리’인 건 중요한 승진 타이밍에 육아휴직을 택한 영향이 크다. 긴 머리를 찰랑거리며 카드 회사를 종횡무진 뛰어다니는 그의 직장생활 모토는 책 제목 그대로다. ‘언젠간 잘리고, 회사는 망하고, 우리는 죽는다!’

사회적 분위기도 일과 일상 사이 무게중심을 점차 일상 쪽으로 기울이는 추세다. 그렇다고 신인류 직장인이 일을 소홀히 여기는 건 아니다. ‘시키니까 한다’보다 ‘왜 일해야 하는가’를 물을 뿐이다. “돌이켜보면 10년간 회사를 다니면서 열심히 일했던 기간도 많았다. 데이터를 기다리며 밤을 새우고 아침에 출근한 적도 있고, 가장 늦게 퇴근하고 가장 일찍 출근하면서 일했던 기간도 있었다. (…) 분명한 것은 나는 회사를 위해 일했다기보다 내 삶을 위해서 일했다는 것이다. 비록 회사는 내 것이 아니지만, 회사에서의 일은 내 일이었기 때문이다.” 책은 ‘신인류 직장인’에게는 공감을, 일터에서 신인류 직장인과 부대껴야 하는 이들에게는 이해를 선사한다.

구은서 기자 k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