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 1,500m 이변의 金 와이트먼…그의 아버지는 전직 마라토너이자 장내 아나운서
제이크 와이트먼(28·영국)이 가장 먼저 결승선을 통과하자, 유진 헤이워드 필드에 "저 선수가 내 아들이자, 세계선수권 챔피언입니다"라고 외치는 장내 아나운서 제프 와이트먼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제프 와이트먼은 마라톤 선수 출신으로 올림픽 육상과 세계육상선수권에서 장내 아나운서로 일한다.

그의 아들은 중거리 선수 제이크 와이트먼이다.

올림픽 육상 또는 세계육상선수권에서 챔피언이 탄생하면 큰 목소리로 "축하합니다.

챔피언이 탄생했습니다"라고 유쾌하게 소개하던 제이크 와이트먼은 유진 세계선수권 남자 1,500에서는 조금 더 특별하게 챔피언의 탄생을 알렸다.

와이트먼은 20일(한국시간) 미국 오리건주 유진 헤이워드 필드에서 열린 남자 1,500m 결선에서 3분29초23의 개인 최고 기록을 세우며 우승했다.

강력한 우승 후보로 꼽힌 '현역 중거리 최강자' 야코프 잉게브리그스텐(22·노르웨이)은 3분29초47로 2위에 자리했다.

잉게브리그스텐은 1,200m까지 선두를 달리기도 했다.

하지만, 와이트먼이 1,300m를 1위로 통과했고 결승선에도 가장 먼저 도착했다.

영국 선수가 세계선수권 남자 1,500m에서 우승한 것은 제1회 세계선수권이었던 1983년 헬싱키 대회 스티브 크램 이후 39년 만이다.

와이트먼은 세계육상연맹, BBC 등과의 인터뷰에서 "나조차 믿을 수 없는 결과다.

내가 트랙을 떠날 때까지 이 장면이 언급되지 않을까.

이런 장면을 만들었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라고 감격을 표했다.

종전 와이트먼의 메이저 대회 최고 성적은 '5위(2019년 도하 세계선수권)'였다.

지난해 열린 도쿄올림픽에서는 10위에 그쳐 실의에 빠지기도 했다.

이번 유진 세계선수권에서도 와이트먼은 입상을 예상하지 못했다.

남자 1,500m 시상식은 21일에 열렸는데, 메달 획득을 기대하지 않은 와이트먼은 시상식 30분 뒤에 출발하는 비행기를 예약했다.

1,500m에 우승하고, 세리머니를 마친 뒤 와이트먼은 "하루 전에 비행기 출발 시간을 바꿀 수 있나"라고 묻기도 했다.

다행히 와이트먼은 세계육상연맹의 도움을 얻어 다른 항공편을 구했다.

와이트먼의 아버지 제프 와이트먼도 '아들의 우승 소식'을 전할 것이라고 상상하지 못했다.

제프 와이트먼이 자신도 모르게 외친 "와우, 내 아들이자 월드 챔피언"(Wow. That is my son and he is the world champion)이라는 '우승자 소개'에 관중들은 더 크게 환호했다.

제프 와이트먼은 1990년 코먼웰스(영연방)게임에 영국 대표로 출전한 마라토너였다.

제이크 와이트먼의 어머니 수전 와이트먼도 마라토너였고 1988년 서울올림픽에 출전했다.

그의 숙모인 앤절라 투비는 서울올림픽 10,000m에 영국 대표로 출전했다.

자연스럽게 육상을 시작한 제이크 와이트먼은 15세까지 아버지 제프의 지도를 받았다.

이후 아들을 '소속팀 코치'에게 맡긴 제프 와이트먼은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 처음 '장내 아나운서'로 나섰고,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2021년 도쿄에서도 '올림픽 육상' 장내 아나운서로 활약했다.

세계육상선수권에서도 2015년 베이징, 2017년 런던, 2019년 도하, 2022년 유진까지 매번 마이크를 잡았다.

그는 해박한 육상 지식과 경쾌한 목소리로 선수와 팬 사이에서 가교 구실을 했다.

다른 선수의 성과를 축하하고, 이력을 소개하던 제프 와이트먼은 마침내 세계선수권에서 가장 먼저 결승선을 통과한 제이크 와이트먼을 "내 아들이자, 세계 챔피언입니다"라고 불렀다.

평생 잊지 못할 짜릿한 경험이었다.

아버지도, 아들도 서로에게 "고맙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