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에게 배반당한 자의 마지막 몸부림…'토르: 러브 앤 썬더'
마르다 못해 쩍쩍 갈라진 땅 위를 맨발로 걷는 한 남자의 품에 어린 딸이 힘없이 안겨있다.

죽어가는 딸을 끌어안은 그가 찾는 것은 신(神). 일용할 물과 식량을 달라고 애타게 외치지만 그의 기도는 가닿지 않고, 딸은 끝내 세상을 떠나고 만다.

마지막까지 신을 믿었던 그가 '신을 버리겠다'고 다짐한 순간 손에는 신을 죽일 수 있는 전설의 검(劍) 네크로소드가 주어진다.

마블 스튜디오가 올여름 선보일 신작 '토르: 러브 앤 썬더'는 천둥의 신 토르(크리스 헴스워스 분)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네 번째 영화다.

하지만 영화의 진정한 주인공은 영웅 토르가 아닌 악당 고르(크리스천 베일)인 듯하다.

타이카 와이티티 감독이 "고르가 마블에서 최강의, 최고의 빌런이 될 것"이라고 밝혔듯 핍박받던 약자 고르의 분노는 영화가 막이 내린 뒤에도 진한 여운이 있다.

신에게 배반당한 자의 마지막 몸부림…'토르: 러브 앤 썬더'
'신 도살자'로 변신한 고르는 토르의 고향 아스가르드를 습격해 아이들을 납치한다.

토르는 옛 연인 제인(내털리 포트먼), 뉴 아스가르드의 왕 발키리(테사 톰프슨), 전사 코르그(타이카 와이티티)와 함께 세상을 구하기 위한 여정을 떠난다.

첫 목적지는 신들의 회의가 열리는 옴니포턴스. 도움을 청하기 위해 도착한 회의장에서는 '광란의 파티'를 어떻게 열 것인지, 인간 제물을 가장 많이 받은 신은 누구인지에 관한 이야기가 오간다.

설상가상으로 '신들의 왕' 제우스(러셀 크로)는 이곳에 있는 신들의 안전을 위해 토르를 옴니포턴스에 가두려 한다.

관객들이 고르의 분노에 다시 한번 이입할 수 있는 대목이다.

가까스로 옴니포턴스를 탈출한 토르 일당은 고르와의 대결을 위해 어둠의 도시 섀도 렐름으로 향한다.

신에게 배반당한 자의 마지막 몸부림…'토르: 러브 앤 썬더'
천재 천문학자에서 '마이티 토르'가 되어 돌아온 제인의 활약도 돋보인다.

제인은 암 말기 진단을 받고 치료법을 찾던 중 토르의 무기였던 '묠니르'의 새 주인이 되면서 토르에게 힘을 보탠다.

빨간 망토를 두르고 거침없이 묠니르를 휘두르는 내털리 포트먼의 액션은 쾌감을 준다.

전우이자 연인으로 관계의 새 국면을 맞이한 제인과 토르의 이야기도 관전 포인트다.

토르는 '이게 얼마 만이지?'라고 묻는 제인에게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8년 7개월 6일'이라 답하며 변함없는 애정을 보여준다.

제인이 묠니르를 차지할 수 있게 된 데에도 연인을 향한 토르의 무한한 사랑이 있었다.

토르와 제인의 과거가 설화를 들려주는 듯한 방식으로 삽입돼 전작을 보지 않은 관객이 따라가기에도 무리 없어 보인다.

신에게 배반당한 자의 마지막 몸부림…'토르: 러브 앤 썬더'
액션, 웃음, 감동이 적절하게 배합된 영화는 전형적인 마블 영화의 기승전결을 따른다.

'토르: 라그나로크'(2017)에 이어 메가폰을 잡은 타이카 와이티티 감독 특유의 웃음 코드도 기대를 충족한다.

극 곳곳에 배치된 깨알 같은 유머는 신에게 배반당한 자의 복수라는 소재가 가진 무거움을 상쇄시킨다.

다음 세대 히어로의 탄생을 암시하는 듯한 결말과 한층 더 스케일이 커진 전쟁을 예고하는 듯한 쿠키 영상은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의 또 다른 확장을 기대하게 만든다.

6일 개봉, 119분, 12세 이상 관람가.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