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에 새겨진 이름' 주제로
쇼스타코비치 '현악4중주 5번'
바흐 '대위법 14번' 등 연주
참신한 기획과 연주력 돋보여

지난 6일 오후 7시 30분 예술의전당 IBK챔버홀에서 열린 화음챔버오케스트라 제43회 정기연주회 현장입니다. 본격적인 연주에 앞서 연주곡 해설을 위해 마이크를 잡은 음악평론가 송주호가 위의 질문을 화두로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습니다.
이날 음악회의 주제 또는 제목은 ‘음악에 새겨진 이름’, 영어로는 ‘My Name in My Music’입니다. 화음챔버오케스트라가 “쇼스타코비치를 통해 음악과 사회에 대해 생각해보는 일곱 번째 시간”이라고 했는데 이번에 선택한 작품이 ‘현악사중주 5번‘이다 보니 주제가 이렇게 정해졌나 봅니다.
쇼스타코비치는 교향곡 수와 똑같은 15편의 현악사중주를 남겼습니다. 교향곡과 마찬가지로 현악사중주 각 곡에는 작곡가의 음악적인 변화와 함께 각 시기 소련 사회 체제의 복잡한 측면과 이에 대응하는 개인의 심경과 상황이 반영돼 있습니다.
현악사중주 5번(1952년 작곡)은 이른바 ‘즈다노프 독트린’으로 작곡가가 큰 고통을 받고 있던 시기에 쓰였습니다. 이듬해 작곡된 교향곡 10번의 선구적인 작품이라고 합니다. 두 곡 모두 작곡가 내면의 모순에 찬 갈등과 쇼스타코비치 특유의 비극적이고 조금은 기괴한 정서, 깊은 사색을 풍부한 이미지로 표출했다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공통점은 또 있는데요. 작곡가 이름의 머리글자인 D, S(E♭), C, H(B)를 적용한 음형을 주제에 사용했다는 것입니다. 현악4중주 5번에선 음의 위치를 바꿔 ‘C-D-S(E♭)-H(B)’, 다장조 기준 계이름으로 ‘도-레-뮈(낮은 반음 미)-시’의 음형이 1악장 첫 주제에 쓰입니다. 그렇게 작곡가의 심정과 자의식을 음악에 새겨넣은 것이죠.

송주호의 해설과 프로그램 노트에 따르면 작곡가가 특정 인물의 이름을 음이름으로 옮겨 주제를 만드는 일종의 음악적 암호 기법은 르네상스 시대부터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를 ‘Soggetto Cavato’, 즉 ‘옮겨온 주제’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주로 후원자의 이름을 경의의 표시로 사용했다고 하는데, 바흐는 자신의 이름 즉 ‘B(B플랫)-A-C-H(B)’를 넣었습니다. 이는 음악 작품의 지향점이 감상자가 아니라 작곡가라는 인식의 변화가 나타났음을, 작곡가에게 악공(樂工)이 아니라 예술가로서의 정체성이란 인식이 생겨났음을 의미합니다. ‘음악의 아버지’라 불릴 만하죠. 사회의 변화가 음악에 반영된 또 하나의 모습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이어 유진선의 ‘Mi-In-Do’가 연주됐습니다. 2013년 화음챔버오케스트라의 공모 당선작으로, 신윤복의 그림 ‘미인도’를 모티브로 작곡된 작품입니다. 작곡가는 ‘미인도’라는 제목이 ‘미(E)’와 ‘도(C)’를 포함해 음악적이라는 것에 주목했다고 합니다. ‘도(Do)의 안(In)에 미(Mi)가 있다’는 것인데 미는 도 안에 있는 배음(倍音)이자 제3음이니 음악적으로 말이 되죠. 작곡가는 이런 음악적 구성뿐만 아니라 미인도를 보고 느낀 감흥을 시와 음악으로 표현했다고 합니다. 본래 현악오중주곡인데 이날은 현악오케스트라 버전으로 연주했습니다. 주로 가장 낮은 저음을 내며 리듬을 담당하는 더블베이스가 멋진 하모닉스(배음열)를 들려줬습니다. 이를 중심으로 퍼지고 다양하게 이뤄지는 화성과 색채가 인상적인 곡이었습니다.

인터미션 후 2부에 쇼스타코비치의 현악사중주 5번을 작곡가 안성민이 현악오케스트라를 위해 편곡한 실내교향곡 5번이 초연됐습니다. 이날 연주회의 하이라이트였습니다. 해설자가 연주 전에 “리허설을 들어보니 원곡의 음악적 효과를 강조해서 드러냈고, 장면의 표현을 잘 살렸다”고 했는데 들어보니 과연 그랬습니다.

현악4중주 원곡 이상의 감동을 주는 편곡과 연주였습니다. 사회의 억압과 공포, 무자비한 이념의 폭압에 짓눌리고 신음했지만, 끝내 굴하지 않으면서 더없이 내밀하고 슬픈 음악으로 자신을 호소했던 쇼스타코비치의 진정성에 공감하고 감동받는 시간이었습니다. 앙코르로 들려준 쇼스타코비치의 ‘왈츠 2번’은 조금은 난해하고 진지했던 공연 레퍼토리에서 비롯된 무거운 분위기를 가볍고 밝게 해줬습니다. 화음챔버오케스트라는 창작음악과 현대음악 위주로 참신하고 수준 높은 프로그램을 선보여 왔는데요. 이날 공연도 쇼스타코비치와 ‘음악에 새겨진 이름’을 통해 음악과 사회에 대해 생각해 본다는 기획 취지와 프로그램이 뛰어난 연주력과 조화롭게 어우러진 연주회였습니다.
송태형 문화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