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에 35차례 건의 성과…원정 소각 따른 감염우려 해소 등 기대
병원에서 발생하는 의료폐기물을 원거리 소각시설로 보내지 않고도 병원 내에 자체 설치한 멸균분쇄시설을 이용해 처리할 수 있게 됐다.
안양시는 27일 "적극적인 규제개선을 통해 병원 내 멸균분쇄시설 설치를 못 하게 막고 있던 정부 여러 부처의 중첩규제를 해소했다"고 밝혔다.

전국에서 발생하는 의료폐기물은 2019년 환경부 기준 일평균 646t으로, 이 가운데 47%가량이 수도권에서 나온다.
그러나 의료폐기물 전용 소각장은 전국에 14곳 밖에 없고, 그마저 수도권에는 용인, 포천, 연천 등 3곳에 불과하다.
서울시와 전북, 강원, 제주는 소각장이 아예 없다.
이러다 보니 수도권에서 발생하는 의료폐기물은 수백㎞ 떨어져 있는 경상도와 전라도 등 타지역까지 장거리 원정 소각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장거리 원정 소각은 운송 차 사고 발생 시 의료폐기물이 유출돼 안전에 심각한 위협을 주고 환경을 오염시킬 수 있지만, 소각장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현실에서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이다.
안양시는 이러한 의료폐기물 처리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대안으로 세계적인 추세로 자리 잡은 병원 내 멸균분쇄시설에 주목했다.
멸균분쇄시설은 의료폐기물을 마이크로웨이브와 고온 증기 등을 이용해 멸균한 뒤 파쇄해 배출하는 시설로, 이 과정을 거치면 의료폐기물이 일반폐기물로 전환돼 생활쓰레기 처럼 손쉽게 처리할 수 있다.
의료폐기물을 발생지인 병원에서 자체 처리함으로써 장거리 이송에 따른 각종 문제를 해결할 수 있고, 소각으로 인한 오염물질을 배출하지 않으며, 부피도 80%까지 줄일 수 있는 것이 장점으로 꼽힌다.

우선 교육환경 보호구역(학교로부터 직선거리로 200m 범위)에는 폐기물처리시설 설치를 금지하도록 교육환경 보호에 관한 법률이 규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병원 대부분이 밀집된 도심 내에 있어 멸균분쇄시설을 설치할 수 있는 곳이 거의 없다.
이에 따라 2019년 당시에는 국내에서 멸균분쇄시설이 설치된 병원은 분당 서울대병원이 유일했다.
2019년 '찾아가는 규제신고센터'를 통해 멸균분쇄시설에 대한 규제를 발굴한 안양시는 이후 산업부의 '산업융합 규제샌드박스'를 비롯해 행정안전부, 국무조정실을 찾아다니며 교육환경법 규제 개선을 요청했다.
이런 노력 덕에 교육부가 2020년 5월 교육환경법 시행령에 '교육환경 보호구역 내 멸균분쇄시설 설치가 가능하다'는 조항을 신설했다.
이 규제가 풀어진 덕분에 그해 가천길병원과 용인세브란스병원에서 멸균분쇄쇄시설을 설치했다.
그러나 도심 내 모든 병원에서 멸균분쇄시설을 설치하기에는 더 큰 규제장벽이 남아있었다.
지자체 건축허가 담당자가 멸균분쇄시설을 병원의 '부속용도 시설'로 해석하느냐, 아니면 '폐기물 처리시설'로 해석하느냐에 따라 설치 여부가 갈렸기 때문이다.
국토계획법 제76조가 구분하고 있는 주거지역, 상업지역, 공업지역, 녹지지역 등 20개 용도지역에 따라 폐기물 처리시설 같은 특정 건축물의 설치를 제한하고 있다.
경상도의 한 병원에서는 2021년 병원이 있는 지역이 상업지역이어서 폐기물처리시설 설치가 제한될 뿐 아니라 멸균분쇄시설이 병원의 필수적 부속용도로 볼 수 없다는 이유로 해당 지자체로부터 멸균분쇄시설 설치 허가를 받지 못했다.
안양시는 이 문제를 풀기 위해 2021년 2월부터 행안부 및 전국시장군수구청장협의회 건의, 경기도-국무조정실 시군순회간담회 안건 상정 등을 시도했고, 그해 8월 '멸균분쇄시설이 의료법상 시설이면 병원의 부속용도로 설치 가능하다'는 국토부의 유권해석을 받아냈다.
이어 이달 8일 '멸균분쇄시설을 의료기관의 의무시설로 포함할 수 있다'는 보건복지부의 유권해석까지 끌어내면서 어느 병원에서나 멸균분쇄시설을 설치할 수 있는 길을 여는 데 성공했다.
이에 따라 건축용도 제한 대상이던 대학병원 67개를 포함한 전국 650개 병원에서 멸균분쇄시설 설치가 가능해졌다.
안양시 정책기획과 유지형 과장, 규제개혁팀 조성희 팀장과 권구현 주무관이 병원과 기업, 전문가 등과 491차례 거버넌스 소통을 하고, 경기도와 행안부, 국무조정실 등 중앙부처에 35차례 걸쳐 규제개선을 건의한 지 2년 5개월 만의 성과다.
안양시는 이런 규제개선 노력으로 2020년 행안부 규제애로 해소 우수사례로 선정된 데 이어 2021년 행안부 실패박람회 실패극복사례 공모에서 사회공헌상을 받았다.

2018년 기준 의료폐기물 처리 세계 시장 규모는 135조원이고, 국내 시장은 2천억원인 것으로 알려졌다.
유지형 과장은 "코로나19 팬데믹과 고령화 시대를 맞아 의료폐기물이 점차 증가하는 상황에서 친환경 멸균분쇄시설 설치의 높은 장벽인 중첩규제를 끊임없는 도전과 노력으로 해결할 수 있었다"면서 "앞으로도 시민과 기업이 체감할 수 있는 규제개선을 위해 더욱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