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권력의 심리학'
악한 자가 권력을 잡는가, 권력이 부패한 인간을 만드는가
부패하기 쉬운 사람이 권력에 이끌리는가, 권력이 권력자를 부패하게 만드는가.

그 이전에 인간은 왜 악하거나 부패하는 인물을 선택하는가.

권력과 인간을 둘러싼 이같은 의문은 비단 역사 속 독재자들의 말로를 보고서만 생겨나지 않는다.

멀쩡하던 사람도 조직의 리더로 권력을 쥐게 되면 망가지는 경우를 우리는 종종 목격한다.

신간 '권력의 심리학'은 인간행동에 관한 이론을 토대로 이같은 질문에 답변을 시도하는 책이다.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UCL) 국제정치학과 부교수인 저자는 쿠데타로 쫓겨난 마르크 라발로마나나 전 마다가스카르 대통령, 중앙아프리카공화국을 '제국'으로 선언하고 황제 자리에 오른 장 베델 보카사의 딸 등 수백 명을 인터뷰해 권력의 작동 방식을 연구했다.

인도의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실험 결과를 보면, 일단 유전자까지는 아니더라도 부패하기 쉬운 성향의 사람들이 권력을 원하는 경향이 확인된다.

대학생들에게 주사위를 마흔두 번 굴리게 하고 큰 숫자가 나올수록 더 많은 현금을 받을 수 있다고 하자 많은 학생들이 숫자를 부풀려 보고했다.

거짓으로 높은 숫자를 보고한 대학생들은 공무원이 되고 싶다고 말한 비율이 평균보다 높았다.

그러나 제도와 문화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덴마크에서 같은 실험을 했더니 정직하게 점수를 보고한 대학생들이 오히려 공무원을 원했다.

거짓 보고를 한 이들은 부를 쌓을 수 있는 다른 직업을 선택했다.

저자는 "좋은 시스템은 윤리적으로 권력을 추구하는 도덕적 집단을 만들 수 있다"고 말한다.

유엔 주재 각국 외교관들의 불법주차도 문화와 제도가 부패에 얼마큼 영향을 미치는지 보여주는 사례다.

뉴욕시가 외교관 면책특권을 폐지하기 전까지 가장 많은 불법주차를 한 외교관들은 쿠웨이트·이집트·차드 등 부패로 이름난 국가 소속이었다.

반면 스웨덴·노르웨이·일본 외교관들은 주차딱지가 하나도 없었다.

불법주차를 반복하면 외교관 번호판을 취소하는 '삼진 아웃' 제도가 도입되자 쿠웨이트 외교관의 평균 주차위반 건수는 249번에서 0.15번으로 줄었다.

제도적 민주주의가 보장돼 있다면 선하고 이타적인 지도자를 고르면 될 일이다.

그러나 현실은 반대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저자는 이같은 지도자 선택의 오류를 '진화적 불일치'로 설명한다.

문명화 과정을 거치면서 사회는 급변했지만 인간 뇌의 크기는 20만 년 전 석기시대와 별 차이가 없다.

여성보다 남성, 남성 중에서도 신체적으로 강인한 남성을 선호하는 수렵채집 시대의 지도자 선택 기준을 뇌가 아직까지 기억하고 있다는 것이다.

"인간은 현대의 현실을 더는 반영하지 않는 특정 근거들로 지도자를 선택하는 방법을 배워왔다.

이제 그 오래된 본능을 버릴 시간이다.

"
웅진지식하우스. 브라이언 클라스 지음. 서종민 옮김. 448쪽. 1만8천원.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