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왼쪽)와 이준석 대표가 지난 1일 오전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을 참배하기 전 악수하고 있다.  두 사람은 새해 복많이 받으라는 인사 이외에 이 대표의 선대위 복귀 문제 등에 대한 얘기는 하지 않았고, 냉랭한 기류를 보였다. 연합뉴스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왼쪽)와 이준석 대표가 지난 1일 오전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을 참배하기 전 악수하고 있다. 두 사람은 새해 복많이 받으라는 인사 이외에 이 대표의 선대위 복귀 문제 등에 대한 얘기는 하지 않았고, 냉랭한 기류를 보였다. 연합뉴스
2021년 6월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대표 경선에서 승리했을 때 기자는 이렇게 쓴 바 있다.

“‘변화에 대한 이 거친 생각들, 그걸 바라보는 전통적 당원들의 불안한 눈빛, 그걸 지켜보는 국민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지난해 6월 11일 당선 수락 연설에서 한 말이다. 36세의 제1 야당 대표를 향한 불안한 시선을 의식한 것이다. 정치 초년병인 자신을 향한 기대와 불안을 갖고 있다는 것을 충분히 알고 있고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 내포돼 있다. ‘이준석 신드롬’은 차기 대선판도 흔들어 놓고 있다….”

6개월여 지난 지금 국민의힘의 상황은 어떤가. 노래 가사 딱 그대로다. 윤석열 대선 후보 측과 이 대표가 연일 삐걱거리는 소리를 내고 있다. 당은 윤 후보 측, 이 후보와 김종인 총괄비상대책위원장 측, 어느 측도 아닌 방관자, 혹여라도 윤 후보의 낙마를 슬쩍 기대하는 측 등으로 갈래갈래 쪼개져 있다. 이를 바라보는 당원들의 눈빛은 불안과 불만으로 가득 차 있다.

두 사람의 갈등은 윤 후보의 정치판 등장 때부터 시작됐다. 이 대표는 지난해 6월 대표 당선 직후부터 ‘대선 버스 정시 출발론’을 내세우며 8월까지 입당하라고 윤 후보를 압박했다. 당시만 하더라도 윤 후보는 제3지대 출마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었다. 윤 후보가 고심 끝에 국민의힘을 선택한 이유에 대해 지난해 12월 23일 속내를 털어놓았다. “민주당에 들어갈 수 없어 부득이 국민의힘을 선택했다”는 것이다. 그러던 차에 이 대표가 ‘이준석 밴드왜건’에 빨리 탑승하라는 식으로 압박하자 윤 후보는 굉장히 자존심이 상했다고 측근들은 전했다. 윤 후보가 지난해 7월 30일 이 대표가 지방 일정 때문에 당을 비운 사이 ‘기습 입당’해 ‘대표 패싱’ 논란을 일으킨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후보 선출되면 대표는 후보를 철저히 따라가는 게 보통

두 사람의 신경전은 윤 후보가 지난해 11월 5일 국민의힘 후보로 확정된 뒤 선대위 구성을 둘러싸고 이어졌다. 이 대표가 지난달 초 당무를 보이콧하고 지방으로 내려간 것은 한 편의 코미디다. 윤 후보가 울산으로 내려가 이 대표와 만나 가까스로 봉합하는 모양새를 취했지만 싸움의 뇌관을 제거하지 못하면서 충돌이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급기야 윤 후보 측인 조수진 선거대책위원회 공보단장이 이 대표에게 대들고 이 대표는 선대위원장에서 사퇴하는 한심한 상황이 연출됐다.

선대위가 당을 비롯한 공조직에 의해 시스템적으로 움직이는 게 아니라 ‘윤핵관(윤석열 핵심 관계자)’을 비롯한 윤 후보 측근 그룹에 의해 ‘농단’되고 있다는 게 이 대표의 불만이다. 당이 배제되고 일부 측근에 의해 선대위가 돌아가면서 윤 후보의 처가 의혹 등에 대해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국민의힘의 한 의원은 “(윤 후보의 부인)김건희 씨 대응 방안과 윤 후보의 일정, 메시지 전략 등에 대한 보고서를 올리면 번번이 차단되는 등 소통이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선대위 조직이 마치 이회창 후보가 그를 둘러싼 측근 ‘병풍 조직’ 때문에 대선을 망쳤던 때와 비슷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김건희 씨 의혹에 대해 진위 여부를 조속히 가려내 소명할 것은 하고 사과할 것은 해야 했는데 우왕좌왕하다가 매번 타이밍을 놓친 것도 윤 후보 측근들에 의한 경직된 조직 때문”이라고 했다.

윤 후보의 정치 리더십에 대한 비판적 시각도 적지 않다. 후보에 선출된 이후 국민의힘은 중진 의원들을 중심으로 한 당권파, 윤 후보 측의 신당권파, 김종인 총괄선대위원장과 이 대표 측의 신진 세력들이 자리와 영입 문제 등을 놓고 사사건건 부딪쳤다. 특히 ‘윤핵관’을 둘러싼 갈등이 심각하게 이어 왔지만 윤 후보는 조정 능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국민의힘의 한 중진 의원은 “상명하복의 일사불란한 검찰 조직과 속된 말로 모두 자기 잘난 맛에 사는 사람들이 득실거리는 정치판에서 요구하는 리더십은 180도 다른데 윤 후보가 아직 이런 정치판에 적응이 안 된 것 같다”고 했다.

문제의 근원이 이 대표에게 있다는 비판도 크다. 대선 후보가 선출되면 당은 철저하게 후보를 중심으로 움직이는 게 정상이다. 윤 후보에게 아무리 불만이 있더라도 이 대표와 같이 공개적으로 불만을 표출한 사례는 없다. 16대 대선 때 이회창 후보-서청원 대표, 17대 대선 때 이명박 후보-강재섭 대표, 18대 대선 때 박근혜 후보-황우여 대표의 짝을 보면 대표는 후보에 대해 불만이 크더라도 있는 듯 없는 듯 하며 철저하게 음지에서 후보를 도왔다.

당장 더불어민주당만 하더라도 송영길 대표는 철저하게 이재명 ‘서포터’를 자처하고 있다. 이 후보가 지금까지 유지해 왔던 당과 정부의 부동산 정책 방향을 바꾸고 있음에도 군말 없이 따라가면서 입법 지원에 나서고 있다.

그런 점에서 이 대표가 사사건건 윤 후보를 비판하는 것은 한국 정치사에서 찾아보기 힘든 ‘전대미문’적 사건으로 볼 수 있다. 특히 최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는 충격적이라고 할 만하다. 윤 후보의 당선 가능성에 대해 즉답을 피한 것부터 그렇다. 이런 질문이 나오면 “반드시 당선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답하는 게 상식이다.

국민의힘의 한 의원은 “대표가 자기 당 후보의 당선 가능성에 대해 이렇게 답한 것은 패배할 수도 있다는 것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이어지는 이 대표의 답변은 더욱 놀랍다. “참 민망하지만 (윤)후보는 경선 과정에서도 감표를 받았고 본선에서도 지금 속도로 하면 골을 넣지 않고는 이길 수 없다. 득표 전략도 없지만 감표를 막는 전략도 거의 없다.”

당 대표가 아니라 마치 상대 당 대변인이 하는 말 같다. 쿠팡플레이 ‘SNL코리아 시즌2’에선 ‘윤 후보 대통령 되기’와 ‘내가 대통령 되기’란 양자택일 질문에 “내가 (대통령이) 되는 게 좋다”고 말했다. 그의 속내가 드러난 답이다. 그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윤 후보와의 마찰이 차차기를 겨냥해 자신의 존재감을 높이려는 ‘자기 정치’를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다.

대표가 사사건건 중계하듯 당 갈등 노출, 비상식적

대표가 갈등을 내부에서 해결하지 못하고 사사건건 중계하듯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 등에서 대응하면서 외부로 노출시키는 데 대한 비판도 적지 않다. 국민의힘의 중진 의원은 “이러니 당 대표인지 ‘셀프 대변인’, 평론가인지 분간하기 어렵다는 비판을 받는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당내 문제를 여론을 통해 논란을 증폭한 뒤 외부 충격을 가하는 방식으로 판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이끌어 가려는 것은 전형적인 대중 정치인의 속성이다. 이에 대해 국민의힘 당직자는 “대표 스스로 거의 해당 행위를 하고 있다”고 했다.

제1 야당 대표가 대선 승리를 위한 전략을 짜고 당을 이끄는 게 아니라 대표직만 맡고 선거 조직에서 손을 뗀 것 자체도 유례를 찾기 힘든 비정상이다. 역으로 윤 후보가 정치 리더십이 부족하고 당내 장악력이 약하다 보니 이 대표가 ‘2030세대’를 뒷배로 삼아 마음대로 휘젓고 다닌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후보가 아니라 대표인 자신이 대선판 주인공이 된 듯 하다. 당 일각에선 대표 사퇴론까지 나오고 있다.

그러는 사이 윤 후보의 지지율은 곤두박질치고 있다. 한국경제신문이 여론 조사 회사 입소스에 의뢰해 지난해 12월 26일 공개한 대선 후보 여론조사(23~24일) 결과에 따르면 윤 후보는 지역별·연령별로 줄줄이 하락세를 보였다. 다른 언론사들의 신년 여론조사 결과도 별반 다르지 않다. 국민의힘은 ‘이준석 신드롬’이 사라진 채 적이 아닌 아군들의 총질에 무너져 가는 모양새다.

홍영식 논설위원 겸 한경비즈니스 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