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사 작성 피의자 신문조서 증거능력 제한하는 개정법…증언으로 혐의 입증해야
"대형 비리 등 재판 난항" 우려…검찰, 조사자 증언·영상녹화 활용 강화 검토

내년 1월 1일부터 형사재판에서 검찰의 피의자 신문조서(피신조서)는 피고인이나 변호인이 그 내용을 인정해야 증거로 사용할 수 있다.

1954년 형사소송법 제정 이래 가장 큰 변화 중 하나다.

바뀐 제도를 바라보는 법조계 반응은 엇갈린다.

법관이 공판 심리에 의해서만 유죄의 심증을 형성해야 한다는 공판중심주의 정착에 기여할 것이라는 긍정론과 실체적 진실 발견에 어려움을 겪거나 사법비용이 증가할 것이라는 우려가 병존한다.

◇ 검사 피신조서 '휴짓조각' 되나…달라질 형사재판 풍경
시행을 앞둔 개정 형소법은 국회가 지난해 312조를 고친 것이다.

검사가 수사 중 작성한 피신조서의 증거능력을 제한하는 게 골자다.

기존 312조는 ▲ 피고인이 검찰 조사 당시 진술한 내용과 조서가 같다는 게 피고인의 법정 진술로 인정되고 ▲ 조서에 적힌 검찰에서의 피고인 진술이 '특히 신빙할 수 있는 상태'(특신상태)에서 행해졌다면 검사 피신조서를 증거로 쓸 수 있다고 규정했다.

피고인이 조서 내용을 부인해도 그 진술 내용이 영상녹화물 등 '객관적인 방법'으로 증명되거나 특신상태에서 나온 것만 입증되면 검사 피신조서에 증거능력을 부여했다.

반면 개정 형소법은 이런 조건을 모두 없애고 피고인 또는 변호인이 내용을 인정할 때로 한정해 검사 피신조서를 법정 증거로 쓸 수 있도록 한다.

재판에서 '검찰 조서에 적힌 내용을 인정할 수 없다'고만 하면 피신조서는 휴짓조각이 되는 셈이다.

'조서 재판'이라는 비판 속에서도 검찰 피신조서가 영향력을 가졌던 것은 기존 형소법이 법원의 형사재판 심리 부담을 고려했기 때문이다.

피신조서에는 검찰이 수사 과정에 획득한 정보가 응축돼있는데 이를 법정에서 재연하려면 적어도 검찰 조사만큼의 시간과 노력이 든다는 현실적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검사 피신조서의 증거능력 제한 여론은 힘을 얻었고 결국 입법으로까지 이어졌다.

한 현직 판사는 "폐쇄된 검찰 조사실의 조사 환경이 만드는 부정적인 진술이 피신조서에 반영될 수 있다는 점이 문제였다"고 말했다.

자백에 의존하면서 객관적인 증거 수집이 잘 이뤄지지 않고, 다른 나라에 없는 제도라는 비판도 있었다.

◇ 재판 장기화·무죄 증가 우려…"진실 입증이 법원 책임이 될 가능성"
개정 형소법 시행을 앞두고 가장 먼저 제기되는 문제는 재판이 길어지고 힘들어질 것이라는 점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부장검사는 "피신조서 증거능력의 제한이 생겨도 일반 형사 사건에는 큰 차이가 없을 것"이라며 "다만 권력형 비리나 조직범죄처럼 공범이 여러 명 있는 수사처럼 진술이 중요한 범죄 재판의 난도가 올라갈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가령 공범이 있는 상황에서 일부 피고인이 증언을 거부하거나 다른 범인의 피신조서 내용을 부인한다면 공모관계를 입증할 증거 제출 자체가 어려워질 수 있다.

공범들이 증언 거부를 '품앗이'해 모두 빠져나가려 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올해 기소되는 사건의 검사 피신조서는 증거능력을 종전과 같지만 내년에 재판에 넘겨지는 사건은 그렇지 않은데, 이들 사건을 각각 진행하다가 항소심에서 합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문제가 될 수 있다.

모성준 대전고법 판사는 지난 10월 열린 토론회에서 "중요 사건의 무죄율 증가가 불가피하다"며 "피고인의 개별 변소(항변)에 대해 문답으로 진실을 밝혀야 하는 책임은 온전히 법원 몫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목격자가 존재하기 어려운 마약이나 성매매, 도박 사건도 증거 확보에 어려움이 생길 가능성이 있다.

재판 절차 지연 우려도 있다.

정의의 실현이 지연되는 것 역시 바람직하지 않다는 주장이다.

모성준 판사는 "재판이 지연됐을 때는 직접주의에 의미가 없다.

사건 발생일로부터 3년 뒤 (재판을) 진행한다면 조서가 더 정확하다"고 했다.

◇ 대안은 조사자 증언·영상 자료 활용 강화…검찰은 대응 고심 중
오랜 세월 재판에서 활용돼온 검사 피신조서가 힘을 잃게 되면서 당장 공백을 메워야 하는 검찰은 과학수사 물증과 조사자 증언, 영상녹화 자료 활용 등을 대안으로 검토하고 있다.

조사자 증언은 피고인을 수사한 조사자가 법정에 증언자로 나오는 제도로 2007년 형소법에 도입됐다.

그간 활용도는 높지 않았지만 피신조서 증거능력을 어느 정도 대체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영상녹화물은 객관적인 수단으로 여전히 가장 유력하다.

검찰 역시 영상녹화 자료를 재판에 활용할 방안을 강구 중이다.

검사 피신조서 작성에 공을 들인 관행이 달라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이상훈 사법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경찰 수사만으로 수사가 종결돼 검찰 피신조서가 작성되지 않는 사건이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조서를 간이화하는 대신 조사자 증언의 특신상태 입증을 위해 변호인의 피의자신문 참여나 수사 과정의 영상녹화가 활성화될 것"이라고 했다.

대검 관계자는 "제도 변화의 결과를 분석하려면 적어도 6개월에서 1년은 겪어봐야 한다"며 "예상하기 쉽지 않지만 잘 대응한다면 지금 우려와 달리 큰 혼란 없이 정착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