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희대생 주축 점자 스타트업 '모어앤모어'…"수익은 아직, 포기 안해"
"'우리 가게에 시각장애인 안 와요'라는 말을 들으면 힘들어요.

사실은 와도 티를 안 내는 건데…. 아메리카노처럼 어디서나 파는 메뉴를 주문하고 빨리 나가면서요.

"
12일 서울 동대문구 경희대에서 만난 '점자' 스타트업 모어앤모어의 송유빈(22)·박민희(22) 창업자에게 가장 힘들 때가 언제냐 묻자 돌아온 답이다.

이들은 어린 나이에 시작한 사업이 힘에 부친다면서도 "시각장애인들도 자립해 살아가려면 우리 아이디어가 꼭 성공해야 한다"고 힘줘 말했다.

모어앤모어는 올해 7월 동갑내기 학교 친구인 송씨와 박씨가 창업한 스타트업이다.

시각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쓸 수 있는 '모두의 메뉴판'을 보급하고 휴대용 점자 출력기 '점점더'를 개발하고 있다.

기존 점자 메뉴판은 종이를 눌러 점자를 찍는 방식이라 몇 번 쓰고 나면 점자가 뭉개지는 문제가 있었고, 비장애인은 쓸 일이 없어 어느 순간 가게에서 치워지기도 했다.

그래서 이들은 카페 사장들을 찾아가 새로운 메뉴판을 쓰자고 제안했다.

일반 메뉴판과 점자 메뉴판을 합쳐서 새로운 메뉴판을 디자인했고, 점자를 찍는 방식이 아닌 송진잉크를 덮어씌우는 방식으로 뭉개지지 않는 점자 메뉴판을 만들어냈다.

점자 출력기도 이전까지 있던 물건이지만 크고 무거워서 쉽게 점자를 찍어내 쓰기 어려웠다.

이들은 출력기 크기를 휴대전화 수준으로 줄이고,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과 연동해 입말을 즉석에서 점자로 번역해 출력할 수 있게 했다.

두 친구가 '점자'라는 특별한 아이템을 갖고 사업을 시작한 이유는 이렇다.

지난해 유튜브에서 시각장애인이 약국에서 겪는 불편함을 알게 된 것이 계기였다.

약 종류에 따라 먹어야 할 시간이 다르지만, 약사가 시각장애인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은 봉투 끝을 접어주는 것이 전부였다.

일부 약 봉투에는 찍힌 점자도 규격이 제각각이어서 읽기 힘들다고 한다.

"이런 문제가 공론화되지 않은 것이 신기했어요.

주변에 시각장애인이 많지 않으니까 어쩌면 모르는 것이 당연하죠. 그래서 저희가 해보자고 했어요.

"
대학생 둘이 아이디어만 갖고 시작한 사업이지만 성과는 화려하다.

생활발명코리아 대통령상 수상을 시작으로 서울국제발명전시회 금상, 한국여성발명협회 특별상 등을 받았고, 올해에는 독일 뉘른베르크에서 열린 국제 발명박람회(iENA)에 출품해 은상을 수상했다.

점자 메뉴판은 전북 전주 풍년제과 등 관광명소와 서울 각지 카페와 식당 등 70여 곳에서 사용되고 있다.

매번 메뉴를 불러달라고 하기 민망해 아메리카노만 마셨다는 시각장애인에게서 "덕분에 몬테크리스토 샌드위치를 시켰다"는 뿌듯한 피드백이 오기도 한다.

송씨는 "직접 찾아간 카페·식당만 100곳 정도 된다"며 "이제는 네일샵·왁싱숍에서도 연락이 온다.

아메리카노 같은 점자만 찍다가 '레이저 제모'를 찍게 되니까 신기하기도 하고, 시각장애인들이 생각보다 많은 곳을 찾아가시는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고 했다.

뚜렷한 성과가 이어지고 있지만, 회사 운영은 여전히 녹록지 않다.

사업을 키우기 위해 디자인 전문 배현정(22)씨와 연구·개발 전문 김우중(22)씨를 스카우트했지만, 아직 이렇다 할 수익모델이 나오지 않아 두 창업자는 과외와 카페 아르바이트를 하며 직원들 월급을 주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점자 사업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힘들다고 그만두기에는 너무 많은 응원을 받은 것 같아요.

지금 힘들다고 그만두면 '점점더' 나은 세상 만들자고 지은 회사 이름값을 못 하게 되니까요.

포기하지 않을 겁니다.

"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