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부 매뉴얼·교육훈련이 중요…'경찰 내부쇄신 더 시급' 목소리도

개정안은 범죄가 눈앞에서 벌어지려 하거나 이미 벌어지고 있는 긴박한 상황에서 경찰관이 범죄를 예방 또는 진압하다 타인에게 피해가 발생한 경우, 해당 직무 수행이 불가피하고 경찰관에게 고의나 중과실이 없으면 형사책임을 감경하거나 면제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았다.
아직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심의와 본회의 의결 등 입법 절차가 남았지만, 이 법안이 시행되면 범죄 현장 대응 과정에서 부담이 다소 줄지 않겠느냐는 게 일선 경찰관들의 반응이다.
다만 현장의 양상은 천차만별이어서 어디까지가 책임 감면 기준인지는 향후 판례가 쌓여야 일정한 기준이 생길 전망이다.
일각에서는 경찰의 형사책임을 감면하는 것보다 더 시급한 것이 경찰 내부의 근본적인 쇄신과 개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번 법안이 자칫 공권력 남용을 초래할 수 있다는 걱정도 있다.

법이 개정된다고 해서 경찰관이 형사소송을 당하는 부담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총기 등 무기류, 테이저건·수갑·삼단봉과 같은 경찰 장구를 사용하다 보면 상대방의 신체에 상해 등을 입힐 수 있고, 당사자가 '위법한 공권력 행사'라며 경찰관을 고소하는 상황은 언제든 일어날 수 있다.
결국 법안에 명시된 대로 그와 같은 물리력을 행사할 수밖에 없었던 '긴급한 사정'이 있었는지, 물리력 행사 과정에서 우발적으로 위해가 발생한 것이 아니라 의도적으로 해를 입혔는지, 경찰관의 부주의 등 중대한 과실로 위해가 발생했는지가 책임 감면 여부를 가르는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범죄 진압과 관련한 실제 소송 사례를 보면, 경찰관이 폭주족 10여명을 검거하는 과정에서 오토바이를 넘어지게 해 피의자에게 상해를 입히고 이 과정에서 경찰봉으로 사이드미러를 파손하자 피의자 측이 해당 경찰관을 재물손괴 혐의로 고소하는 일이 있었다.
유사한 소송은 개정안 시행 이후에도 얼마든지 불거질 수 있다.
이같은 현장 상황과 피의자들의 당시 행위 등 여러 조건을 따져본 결과 경찰관의 과실이 크지 않다고 판단되면 위법성 조각사유에는 미치지 못하는 사안이라도 예외적으로 형사처벌을 면제하거나 감경할 수 있다는 게 법안 취지다.
다만 무엇을 '중대한 과실'로, 어떤 경우를 '가벼운 과실'로 평가할지는 사안마다 다를 수밖에 없다.
법 시행 이후에도 이와 같은 소송은 계속될 것이고, 여러 사건에 대한 법원 판례가 축적돼야 적당한 기준선이 나오리라는 게 경찰 안팎의 관측이다.
파출소에서 근무하는 한 경찰관은 "개정안이 시행된다고 현장에서 무턱대고 총기나 장구를 사용하겠다는 직원은 없을 것이고, 경찰관이 고의로 상대방에게 피해를 입힌다는 것도 현실적이지 않은 이야기"라며 "중과실 해당 여부가 관건인데 기준을 어떻게 따질지 궁금하다"고 했다.
일선 경찰서의 한 간부는 "흔히 말하는 중과실은 담배꽁초를 버려서 산불을 내는 식의 '현저한 주의의무 위반'에 해당한다"면서도 "경과실과 중과실은 명확히 구분할 수 있는 개념이 아니라 관념적인 것이고, 법원 판단에 달려 있어 어떤 판례들이 나오는지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장의 모든 상황을 법령에 담기란 불가능한 만큼 결국 '매뉴얼'과 교육·훈련 문제로 귀결되지 않겠느냐는 관측도 있다.
형사책임 감면 요건을 충족할 행동 양식을 상황별·사용 장비별로 자세히 나열한다 해도 긴박한 상황에서 경찰관들이 이를 제대로 숙지하고 실행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긴박한 상황' 등 법 조항 문구가 지나치게 포괄적이어서 자칫하면 경찰의 물리력 남용에 면죄부를 줄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물리력 행사가 언제든 인권침해로 이어질 수 있음에도 충분한 사회적 논의 없이 형사책임 감면 입법이 진행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다.
참여연대는 지난 2일 논평에서 "개정안 내용은 포괄적 해석이 가능해 경찰의 자의적 판단으로 이어질 위험이 농후하다"며 "사람의 생명·신체 보호를 위한 물리력 행사뿐 아니라 경찰의 직무수행 전반에 대한 형사책임 감면이 가능한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국회 행안위 논의 과정에서도 경찰력 남용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해 책임 감면 요건을 시행령 등에 구체적으로 열거하는 등 제도를 제한적으로 운용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기도 했다.
이에 대해 경찰청 관계자는 "개정안은 현장 경찰관들이 위축되지 말고 자신 있게 행동하라는 선언적 의미도 있고, 위법한 직무집행에 대해서는 계속 책임을 진다는 의미"라며 "모든 경우에 다 면책하는 것이 아니며 정당하지 않은 공권력 행사는 당연히 처벌받는다"고 말했다.
시민 보호와 정당한 공권력 사용이 조화를 이루려면 현장 대응 역량 강화 등 내부 시스템 정비가 법 개정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한 경찰관은 "움직이지 않는 표적을 쏘고, 근무평정 용도로만 하는 형식적 사격훈련으로는 현장에서 움직이는 표적에 사격하다 중과실을 일으킬 수도 있다"며 "'윗돌 빼서 아랫돌 괴는' 식으로 현장 대응인력을 늘 부족하게 만드는 상황도 반드시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일선 경찰관들은 위급한 현장에서의 공권력 행사에 다소나마 숨통이 트이는 셈이라며 일단 반기는 분위기다.
앞으로는 적극적 직무집행에 대한 책임도 커진다는 점도 무겁게 받아들이고 있다.
일선 경찰서 소속 경감급 경찰관은 "현장에서 적극성을 강화하는 취지 자체는 옳은 방향"이라며 "경찰관에게 적극성과 과감함을 요구하며 의무를 더 많이 부여하는 조항이고, 이제는 '민원이 많이 생겨 어쩔 수 없다'는 식의 소극적 태도가 통하지 않는 상황이 됐다"고 말했다.
개정안은 형사책임에 대해서만 감면 조항을 둬 민사소송에 대한 부담은 여전하다.
경찰관의 직무집행으로 피해를 봤다며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내는 경우가 드물지 않고, 재판 결과를 떠나 소송 당사자가 된다는 것 자체로 경찰관에게는 상당한 심리적 압박감을 주기 때문이다.
시도경찰청에서 근무하는 경위급 경찰관은 "앞으로도 경찰관이 직무수행과 관련한 형사책임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겠지만 현행범 체포 등 과정에서 발생하는 우발적 피해에 대한 민사소송도 여전히 감당해야 한다"며 "혼자 싸우게 두지 말고 조직 차원에서 재정적 지원 등을 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위법한 직무집행으로부터 시민을 보호하고, 정당한 공권력 행사는 최대한 보장하려면 보디캠(body cam)과 같은 현장 촬영장비 도입이 시급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경찰은 2015년 11월부터 일선에서 보디캠을 시범운영 하다 인권침해 논란 등을 막을 법적 근거가 부족해 올 8월 운영을 종료했다.
서울시내 경찰서의 한 간부는 "현장 영상이 녹화된다면 경찰관은 정당한 공무집행의 경우 '긴급한 상황' 등에 대한 소명에 유리할 것이고, 위법한 공권력 행사라면 시민을 보호하는 증거자료가 될 것"이라며 "현장 직원들은 사비로 보디캠을 사서 쓰는 형편인데 관련법이 속히 마련되기 바란다"고 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