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서 처음 열린 '지휘 콩쿠르'…초대 우승자는 美 청년 브라운
지난 14일 저녁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펼쳐진 제1회 KSO국제지휘콩쿠르 결선 마지막 무대. 현악기 화음이 물결처럼 객석으로 밀려왔다. 이내 썰물처럼 소리가 잦아들었고, 순간 관악기의 웅장한 선율이 뿜어져나왔다. 뿔테 안경을 쓴 앳된 지휘자는 지휘봉을 바삐 휘저으며 관객들의 혼을 빼놨다. 미국 지휘자 엘리아스 피터 브라운(26·사진)이 드뷔시의 ‘바다’를 선사하는 순간이었다.

최종 3인의 결선이 끝난 뒤 정치용 심사위원장, 플로리안 리임 국제음악콩쿠르세계연맹 사무총장, 프랭크 후앙 줄리어드음악원 교수 등 7명의 심사위원단은 격론을 벌였다. 예정된 시간을 40분가량 넘긴 끝에 우승자가 발표됐다. 브라운이 우승을 차지했고, 한국의 윤한결(27)이 2위, 중국의 리한 수이(27)가 3위였다. 브라운은 “베토벤이나 모차르트 등 익숙한 레퍼토리 대신 낯선 작품으로 경연을 치러야 해서 준비 과정이 힘들었다”며 “이번 대회를 통해 뭐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고 말했다.

이번 콩쿠르는 코리안심포니가 올해 처음 연 대회지만 지원 열기는 뜨거웠다. 42개국의 23~34세 지휘자 166명이 낯선 콩쿠르에 출사표를 던졌고, 이 중 12명이 본선에 진출했다.

한국에서 처음 열린 지휘 콩쿠르에 앞다퉈 지원한 이유는 뭘까. 수상자들은 성장이 가장 중요한 이유였다고 입을 모았다. 연주 기회가 드문 작품을 맘껏 연주하고 싶었다는 것. 윤한결은 “결선에서 연주한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죽음과 변용’은 워낙 걸작이라 젊은 지휘자가 쉽게 다가가기 어렵다”며 “콩쿠르에서 연주하게 돼 영광”이라고 말했다. 리한 수이도 “콩쿠르를 통해 차이콥스키의 ‘리미니의 프란체스카’를 생애 처음으로 연주한 기억은 평생 간직할 것”이라고 했다.

코리안심포니는 다른 지휘 콩쿠르와의 차별화를 위해 경연곡을 다채롭게 구성했다. 지난 11일 드보르자크 등 19세기 낭만주의 작곡가들 작품으로 1차 본선을 치렀다. 다음날 2차 본선에선 한국 작곡가 김택수의 ‘더부산조’를 연주하게 했다. 국악의 진양조 장단부터 휘모리 장단까지 펼쳐지는 관현악곡이다. 브라운은 “더부산조를 해석할 때 가장 애를 먹었다. 장단을 배우고 장구 소리를 분석한 뒤 오케스트라로 표현하는 걸 이해해야 했다”며 “경연의 모든 과정이 성장의 발판으로 여겨졌다”고 말했다.

수상자에게 주어지는 특전도 다른 콩쿠르 못지않다. 코리안심포니는 1위 5000만원, 2위 2000만원, 3위 1000만원의 상금 외에 수상자들 중 한 명을 부지휘자로 임명해 내년부터 함께한다. 서울 예술의전당, 아트센터인천, 통영국제음악재단, 광주시향, 대전시향, 부산시향, 인천시향 등 7개 예술단체에서도 수상자에게 공연 기회를 제공한다.

오현우 기자 o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