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네임' 김진민 감독/사진=넷플릭스
'마이네임' 김진민 감독/사진=넷플릭스
김진민 감독의 연출력이 또 통했다.

지난 15일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마이네임'은 글로벌 OTT 콘텐츠 순위 사이트 플릭스 패트롤 집계에서 넷플릭스 TOP TV쇼 부문에 4위에 이름을 올렸다. 앞서 공개된 '오징어게임'의 독주가 이어지는 가운데 '마이네임'이 첫 등장부터 존재감을 확실히 남긴 것.

'영웅시대', '개와 늑대의 시간', '로드 넘버원' 등을 내놓은 스타 연출가 김진민 감독은 전작 '인간수업'에 이어 '마이네임'으로 넷플릭스와 호흡을 맞췄다. '인간수업'에서는 같은 반 학생들의 성매매를 알선하는 10대 아이들의 이야기를 담았다면, '마이네임'은 아버지의 죽음 이후 모든 것이 달라진 10대 소녀가 복수를 위해 조직 폭력배의 후원을 받아 언더커버 형사가 된다는 설정을 담았다.
'마이네임' 김진민 감독/사진=넷플릭스
'마이네임' 김진민 감독/사진=넷플릭스
김진민 감독은 "'오징어게임'이 깔아준 판에 제가 살짝 올라간 느낌"이라면서 겸손하게 소감을 전하면서도 "배우들에게 직접 액션을 선보여야 한다고 요구했고, 그 부분을 시청자들도 재밌게 봐주신 거 같다"고 고마움을 전했다.

벌써부터 시즌2에 대한 기대감이 흘러나오고 있지만 "그 부분은 제가 언급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며 "좋은 작품의 시즌1에 제가 참여할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영광"이라고 말했다.
'마이네임' 스틸/사진=넷플릭스
'마이네임' 스틸/사진=넷플릭스
▲ 공개 이틀 만에 월드 랭킹 4위에 이름을 올랐다.

랭킹에 대한 실감이 별로 느껴지지 않았다. '오징어게임'이 깔아 놓은 판에 제가 살짝 올라간 느낌이다.(웃음)

▲ '오징어 게임' 이후 K-콘텐츠라는 점에서 부담은 없었나.

'오징어게임' 이후 'K콘텐츠에 관심을 가져라'라고 하는 분위기가 조성됐다. 이건 정말 말도 안되는 거다. 우리 민족, 전 세계에서 한 민족만 쓰는 언어로 콘텐츠를 만든 건데, 모두가 관심을 갖게 됐다. 누군가 딱 한 번 할 수 있는 일을 '오징어게임'이 해낸 거다. 부담감 보다는 '이 길에 해만 끼치지 말자'는 생각이었다.

▲ 공개 후 어떤 반응들이 기억에 남나.

배우들이 직접 한 액션이니 '화려하다'거나 '끝내준다' 이런 느낌 보다는 '진짜 했을까'라는 느낌을 받길 바랐다. 감정 연기도 중요했지만, 그 부분에 대한 정당한 평가가 있어서 감사했고, 기분이 좋다. 배우들이 몸을 던졌으니까.

▲ 이전까지 누아르, 복수를 다루는 작품에서는 남자 서사가 많았지만, '마이네임'은 여성을 원톱 드라마다.

여성에 대한 이야기라기 보단 인간에 대한 이야기 같았다. 복수를 하고, 스스로 누구인지 정체성을 찾아가는 맥락이 이전의 언더커버 장르에서 보던 것과 다른 관점을 줬다는 점에서 매력적이었다. 극 중 액션이 많다 보니 여자 배우가 이걸 어떻게 설득력있게 선보이느냐가 관건이었는데, 무술감독님과 한소희 배우가 잘 만들어왔다. 액션이 말이 되고 설득력을 갖도록 했다.

▲결과물은 만족스럽나.

액션은 연출할 땐 많이 찍어서 컷을 많이 전환하는 방법, 화면을 빠르게 돌리는 방법을 쓰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배우가 직접 하는 방법이 있다. 제작 여건상 이 모든 걸 한꺼번에 다 할 수 없다. 저희는 직접 하는 거로 방향을 세웠고, 그래서 와이어 액션으로 현란하게 하지는 못했다. 대신 배우가 '몸빵' 했다는 걸 어떻게 보여줄지를 고민했고, 한소희 배우에게도 직접 그 부분을 좋게 봐주신 거 같다.

▲ '마이네임' 이전의 한소희 배우의 이미지는 세련된 도시 여성에 가까웠다. 어떤 가능성을 봤을까.

예쁜 배우가 있다면서 소개를 받았다. 막 주목을 받던 시기였고, 지금 유혹해서 액션을 안 시키면 다신 그런 기회가 안 올 거 같았다.(웃음) 서늘하고 시원한 느낌이 들었고, 액션을 하면 시청자에게 여러 매력을 전달할 수 있을 거 같더라. 다만 직접 액션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했기에 처음엔 해낼 수 있을지 반신반의했다. 하다가 '대역해 주세요' 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단 한 번도 그런 말을 안하더라.

▲ 메이크업을 하지 않은 얼굴이 화면에 그대로 나왔다.

일단 캐릭터적으로 의도했던 부분이고. 무엇보다 그냥 가만히 놓아도 예쁜 배우니까. 앞으로 이 드라마 아니면 계속 풀메이크업 하지 않을까. 저는 그렇게 생각하고 촬영했다.(웃음)

▲ 한소희 배우 외에도 안보현, 장률, 이학주 배우 등도 이전과 다른 이미지를 끌어냈다.

연출은 선택만 할 뿐,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건 배우가 해내야 하는 부분이다. 안보현 배우는 전작 '이태원 클라쓰' 악역을 신나게 했지만, 본인의 성격과 잘 맞는 거로 하고 싶어 하더라. 실제로 정의로운 성격이기도 했고. 캐릭터를 정하고 만난 건 아니었는데, 얘기를 나눌 수록 경찰이 맞아 보였다. 장률 씨는 처음엔 마음에 안들었다.(웃음) 제가 전에 한 번 잘라낸 적이 있다. 그때 '다시 만나지 않을 것'이라고 했는데, 이번엔 진짜 나쁜 놈이 될 거 같더라. 저를 부담스러워한다는 걸 알아서 '최대한 말하지 않을테니 스스로 해내라'라고 했고, 현장에서 할 때 '지 맘대로 하는구나' 싶었다.(웃음) 이학주 배우를 통해서는 조금 다른 느낌의, 이 시대의 제대로 된 넘버2는 어떤 모습을 보여주면서 (시청자들에게) 혼란을 주고 싶었다. 학주 씨가 해준 한컷 한컷이 인상적이었고, 나중에 엄청난 연기를 하지 않을까 싶었다.

▲ 배우들의 '직접' 액션을 위해 따로 요청한 내용이 있을까.

살을 찌워라, 빼라를 요구하진 않는다. 그보단 한소희 배우에겐 근육량을 늘리라곤 했다. 훈련을 하면서 잘 먹고, 잘 자고 해서 몸이 불어난 부분이 있을 수도 있다. 직접 액션을 해야하니 무조건 훈련을 하라고 했고, 배우들도 화면에서 더 멋있게 보이려 열심히 연습한 거 같다.

▲ '인간수업'에 이어 '마이네임' 또한 주인공의 고등학생 시절부터 시작한다는 설정이 있는데, '고등학생'이라는 배경에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궁금하다.

고등학생은 책임을 지기도 하고, 안 지기도 하는 시기다. '인간수업'은 자기네들의 이야기인데, '마이네임'은 자기 얘긴지 몰랐던 사람들의 이야기다. 관점이 달랐고, 개인적으로 '낯선' 느낌의 작품을 하고 싶어하는데, 제가 답을 찾아야 하는 이야기라서 또 넷플릭스와 하게 됐다.

▲ 넷플릭스와 다시 작업을 하셨는데, '인간수업' 시즌2가 아니라 '마이네임'이었다.

시즌2는 제 영역이 아니다. 저는 연출을 하면서 시즌2에 대해 생각하진 않는다. 그 시리즈를 담당하는 분들의 몫이고, 좋은 글을 받아서 영광스럽게도 시즌1을 연출할 수 있었던 게 감사하다는 게 제 입장이다.

▲ 작품들이 넷플릭스에서 방영되면서 지상파보다 수위의 표현에 있어서 자유롭진 않았나.

저는 지상파 출신이고, 자극적인 거로 뭔가 이뤄내야 한다는 생각을 전혀 안하는 건 아니지만 '이걸 본 사람들과 배우들에게 어떤 느낌으로 남을까'라는 생각을 많이 한다. 그 피해가 고스란히 시청자들과 연기를 해내는 배우들에게도 가기 때문에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또 애정 장면이나 이런 부분에 대해서도 의도에 대해서 설명한다. 선정성을 기반으로 한 게 아니라는 의견을 전하고, 많은 대화를 나눴다.

▲ 극 중 러브신 장면이 불필요했다는 의견도 있긴 했다.

불편해서 불필요라는 감상으로 간 거 같다. 연출과 작가로서는 필요했다. '당신의 복수는 무슨 의미가 있냐'고 묻는 필도에게 인간의 감정이라곤 없는 상태의 지우가 온기를 느끼게 된다. 그걸 가장 효과적으로 보여준 장치였다. 논란이 될 수 밖에 없다고 생각은 했지만, '필요없냐'는 말엔 '꼭 필요했다'는 답을 하고 싶다. 지금 와서 봐도 잘한 선택이었다.

▲ 극의 밸런스를 박희순 배우가 맡은 최무진 캐릭터가 잡았다는 평도 있었다.

저는 가장 나쁜 역할이라고 말했다. 스스로 극중 인물에 많이 동화가 돼 스스로 정체성이 확립이 돼 있어서 연기를 하니 저와 의견차이가 있었다. 그 부분이 작품에서도 나와서 좋았다. 박희순 배우의 연기 톤이 이 작품 전체를 섹시하게 만든 거 같다.

▲ 극이 전개되면서 지우의 액션 뿐만 아니라 감정까지 레벨업됐다.

한소희 배우 스스로 잘 이끌어냈다. 그 옆에서 배우들이 독려해주고, 도와주고, 모든 남자들이 소희 씨를 위해 존재했다. 굉장히 연기를 하면서 편한 지점이 있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마이네임' 스틸/사진=넷플릭스
'마이네임' 스틸/사진=넷플릭스
▲ 감독님의 작품을 보면 항상 배우들의 연기가 레벨업된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 것도 모를 땐 거칠게 요구하기도 했고, 조금 나아지고서는 제가 배우들을 '어떻게 할 수 있다'는 오만함이 있었던 거 같다. 이후 함께 어울리면서 즐겁게 하는 방법을 알게 됐다. 촬영 전 '이 장면을 배우가 어떻게 해석했을까' 궁금증을 갖고 가고, 배우가 망설인 부분이 있다거나 제 해석이 다를 때엔 대화를 했다. 무엇보다 캐릭터는 배우가 만드는 거다. 배우들이 집중하는 시간이 올 때, 의심하지 않으면 해 내더라. 제가 레벨업을 시키는 능력이 있는 건 아니다. 그건 연출로 하는 게 아니다. 모든 스태프와 사람들, 그리고 스스로가 믿어야 되는 거다.

▲ 다음 작품은 지금 준비 중인 게 있을까?

논의 중인 건 있는데, 고민해서 선택하려 한다. 아시다시피 제가 맘대로 말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다.(웃음) 비슷한 이야기라도 다른 관점, 좋은 글을 찾고 있다. 연출자는 어떤 글을 만나냐에 따라 달라진다고 생각한다. 저에게 숙제를 내주는 대본을 만나고 싶다.

김소연 한경닷컴 기자 sue12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