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초, 스탠퍼드대에 다니던 케빈 시스트롬은 페이스북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를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한 파티에서 만났다.
그와 동갑이었던 저커버그는 프로그램에 능숙했던 시스트롬에게 같이 일하자고 설득했다.
"지금 일생일대의 기회를 잡는 것이며 엄청난 사업의 출발점에 설 수 있어." 그러나 시스트롬은 저커버그의 제안을 거절했다.
우선 학교를 졸업하고 싶었고, 그가 좋아하는 건축가 브루넬레스키, 와인, 커피 등을 더 공부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는 피렌체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그러나 이 둘의 인연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블룸버그 통신의 IT 전문기자 사라 프라이어가 쓴 '노 필터'(알에이치코리아)는 인스타그램의 탄생과 성장 과정을 담은 책이다.
3년여간 인스타그램의 두 창업자 시스트롬과 마이크 크리거를 비롯해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 관계자들을 심층 취재해 엮었다.
인스타그램은 사진에 중점을 둔 앱이다.
2010년 시스트롬과 크리거가 샌프란시스코 커피숍을 전전하며 만든 이 스타트업은 사용자만 10억 명이 넘고, 현재 100조 원을 웃도는 기업가치를 인정받는 세계적인 회사로 성장했다.
저자에 따르면 인스타그램의 성공 요인은 단순성이다.
시스트롬과 크리거는 앱을 만들며 초반부터 사진이라는 카테고리에 집중했다.
"트위터나 페이스북처럼 멋진 말이나 문구를 짜낼 필요가 없는, 그저 주변에서 발생한 일을 찍어 올리면 그만인 앱"을 만드는 데 주력했다.
여기에 사진을 좀 더 예술적으로 보정하는 방식인 필터 앱을 추가했다.
미술에 대한 조예가 깊었고, 완벽주의 성격을 지녔던 시스트롬의 성향이 강하게 묻어난 앱이었다.
또한 친분이 없어도 관심사만 같으면 팔로 할 수 있는 트위터, 페이스북의 엄지손가락(좋아요)과 비슷한 하트 등을 도입하며 양사의 장점도 수용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스눕독, 저스틴 비버 등 많은 셀럽이 활용하면서 앱 사용자 수가 크게 늘었다.
인스타그램의 몸값은 창립 1년 만에 8천만 달러로 뛰었고, 다시 1년 만에 그 여섯 배가 넘는 5억 달러로 급등했다.
경쟁사를 사버리거나 고사시키는 전략으로 페이스북을 키워나가던 저커버그의 레이더망에 인스타그램이 포착된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생각해봤는데, 당신 회사를 사고 싶어요.
펀딩 라운드에서 얼마를 모금하든 두 배로 주겠소." 결국 인스타그램은 2012년 페이스북의 자회사로 편입됐다.
저커버그는 10억 달러라는 거금을 주고, 인스타그램을 샀다.
당시 고평가 논란이 있었지만, 인스타그램의 기업 가치는 인수 6년 만인 2018년 구매 당시와 견줘 100배나 뛰었다.
책은 이후 페이스북에서 자리를 잡기 위한 시스트롬의 분투에 집중한다.
시스트롬과 저커버그는 성격적으로 너무도 달랐고, 점점 부딪히는 일도 빈번해졌다.
똑같이 역사학에 골몰했으나 중세 예술의 단순성에 빠졌던 시스트롬과 영토 확장에 탐닉했던 로마에 열광한 저커버그는 성향상 부딪힐 수밖에 없었다.
"시스트롬은 고급스러운 제품 경험을 유지하기 위해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라면 웬만해선 제품에 큰 변화를 주지 않았다…. (중략) 저커버그는 제품을 끊임없이 바꾸고 손질하고 비틀어 사람들이 인터넷에서 보내는 시간을 더 늘렸고, 경쟁자를 감시하고 그들을 꺾을 전략을 개발해 커뮤니티를 키워갔다.
" 책은 인스타그램의 성장 과정을 시간 순서에 따라 담담한 필치로 그렸다.
내부 경쟁자인 왓츠앱과 외부 경쟁자인 스냅챗과의 피 말리는 경쟁 구도,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고, 상대방의 전략을 벤치마킹하는 책략 등 다양한 경영 전략도 담았다.
특히 책에서 눈길을 끄는 대목은 저커버그와 시스트롬의 심리 대결이다.
저커버그는 마치 로마 시대의 뛰어난 지략가처럼 상대인 시스트롬을 때로는 무시하고, 때로는 당근책도 던지면서 능수능란하게 그를 압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