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사본풀이·천지왕본풀이에 작가 상상력 더해 새로 재탄생
주호민 "제주신화 생명력 이어가려면 창작물 계속 나와야"

서양에 '잭과 콩나무'란 동화가 있다.

잭이란 소년이 콩을 심었더니 하루아침에 하늘까지 뻗어 올라간 커다란 콩 줄기를 타고 '거인의 성'에 가는 여정을 담은 동화다.

제주신화 '천지왕 본풀이'에도 하늘까지 뻗은 넝쿨을 타고 올라가 아버지 옥황상제를 만나러 간 대별왕·소별왕의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외국의 전래동화는 비교적 잘 알려졌지만, 정작 우리 것인 제주신화는 알려지기는커녕 모르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마찬가지로 쌍천만 관객을 모은 영화 '신과 함께' 시리즈가 '제주신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는 것 역시 일반인들은 모르는 경우가 많다.

'신과 함께' 시리즈는 2017년, 2018년에 개봉한 '신과 함께-죄와 벌'과 속편 '신과 함께-인과 연'이 각각 1천400만명, 1천200만명 등 도합 2천600만명의 관객을 모으며 '쌍천만 영화'라는 타이틀을 품에 안은 한국 최고의 흥행 영화다.

영화의 원작 주호민 작가의 웹툰 '신과 함께'는 2010∼2012년 3년간 포털 사이트에 연재되며 많은 인기를 끈 바 있다.

주 작가는 영화 제작발표회 당시 "제주신화를 졸여서 만든 게 만화고, 만화를 졸여서 만든 게 영화다.

음식도 조리면 졸일수록 맛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만화와 영화의 근본 뿌리가 '제주신화'였음을 밝힌 것.
영화를 보면 제주신화의 요소가 곳곳에서 드러난다.

우선 저승 삼차사를 이끄는 강림(하정우 분)은 제주신화인 '차사본풀이'의 주인공이다.

차사본풀이는 동헌의 유능한 관원인 '강림'이 일종의 살인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저승을 다녀온 뒤 염라대왕의 눈에 띄어 저승차사가 되는 과정을 그린 제주신화다.

차사는 염라대왕의 명을 받들어 목숨이 다한 사람의 혼을 데리고 가는 저승사자다.

차사본풀이는 제주 사람들의 사후세계에 대한 관념이 잘 나타나 있다.

또 나이순으로 저승에 가는 게 아닌 사람마다 죽는 시기가 다른 이유를 신화적 상상력을 바탕으로 재미있게 설명하고 있다.

내용을 간략하게 줄여 설명했지만, 직접 읽어보면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신과 함께-인과 연'에는 재개발 지구에 홀로 남은 할아버지와 손자를 지키는 가택신 '성주신'(마동석 분)이 등장한다.

제주신화에도 가택신 이야기를 담은 '문전본풀이'가 있다.

'문전본풀이'는 부엌에는 '조왕신'이, 문간에는 '문전신'이, 뒷간에는 '측신' 등 집안 곳곳에 신들이 좌정하게 내력을 풀어준다.

물론 이야기는 영화의 내용과 전혀 다르다.

하지만 신들을 잘 모시면 집안을 잘 지켜주는 등 복을 받고, 제대로 모시지 않을 경우 벌을 받는다는 기본적인 내용은 한결같다.

무엇보다 영화 '신과 함께'에 드러난 이승과 저승의 세계관을 들여다보자.
영화는 망자가 이승에서 지은 죄를 저승에서 심판받는 형식이다.

죽은 뒤 49일 동안 살인, 나태, 거짓, 불의, 배신, 폭력, 천륜 등 7개의 지옥 재판을 차례로 받는다.

알다시피 이승에서의 법은 누구에게나 공정하진 않다.

하지만 저승에선 7개의 재판을 통해 아주 작은 사소한 잘못 하나 놓치지 않고 심판한다.

이승은 불완전하고 혼잡하며 시기와 질투·불신·살인·절도·전쟁이 끊이지 않는 세상이지만, 저승은 그렇지 않다.

제주신화 '천지왕본풀이'는 인간 세상이 저승과 달리 공정하지 못하고 혼란스러운 이유를 설명해준다.

두 아들을 만난 옥황상제가 대별왕과 소별왕에게 각각 이승과 저승을 맡아 다스리도록 하려 했지만,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형인 '대별왕'보다 능력이 모자란 동생 '소별왕'이 욕심을 부려 이승을 차지한 까닭에 오늘날 사람들이 불평등과 각종 사회문제로 고통을 받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신화의 말미에 대별왕은 자신을 속이고 이승을 차지한 소별왕에게 의미심장한 말을 한다.

"이 세상을 어떻게든 잘 다스려보아라. 나는 저승으로 가마. 저승법은 맑고 공정할 것이야."
이승과는 달리 대별왕이 다스리는 저승은 맑고 공정한 저승법에 의해 어떤 혼란도 억울한 일도 없을 것이란 일종의 선언과도 같다.

'천지왕본풀이'는 사람들에게 지금 이승에서 겪는 고통 때문에 자신을 책망하지 않도록 토닥여준다.

대신 저승에서는 공정하게 평가받으리라는 마음의 위안과 희망을 준다.

제주신화 속에 담겨 지금까지 내려오는 이승과 저승의 세계관이다.

이렇듯 차사본풀이와 천지왕본풀이 등 다양한 제주신화는 작가의 상상력에 의해 변형되고 다양한 이야기가 새로 입혀져 또 다른 이야기로 재탄생했다.

영화의 원작 웹툰 '신과 함께'의 주호민 작가는 앞서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제주도 신화를 너무 재미있게 읽어서 그걸 바탕으로 '신과 함께'를 만들었다.

신화가 생명력을 이어가려면 관련 창작물이 계속 나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굉장히 운 좋게 제 만화가 많은 사랑을 받게 돼서 (제주도 신화가) 알려진 걸 기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허남춘 제주대학교 교수는 "제주신화는 그리스로마신화와 대등하다.

주호민 씨가 제주신화를 통해 '신과 함께'를 만들어 커다란 성과를 냈다"며 "앞으로 제주신화를 바탕으로 다양한 콘텐츠를 만들어 보급하고, 교육 현장에서도 당당하게 가르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