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과 진보에 대한 맹신, 인간 중심주의를 비판해온 정치철학자가 인간과 구별되는 고양이의 본성을 가벼운 어조로 논한다. 고양이와 인간의 교감을 다루면서 자연스럽게 몽테뉴와 쇼펜하우어, 스피노자, 파스칼의 사상을 소개하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다. 고양이를 통해 인간의 행복과 삶의 의미, 잘사는 방법이란 무엇인지를 고민한다. (김희연 옮김, 이학사, 204쪽, 1만5000원)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을 두고 흔히 하는 말이다. 이처럼 일본은 한국과 비슷하면서도 묘하게 다르다. 적잖은 사람들의 눈엔 한 면만 부각된다.막연하게 한국과 별 차이가 없다고 여기는 이가 있는가 하면, ‘이상한 나라’라며 폄훼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여전히 해결점을 찾지 못하는 과거사 문제에 첨단기술과 전통, 디지털과 아날로그가 혼재된 일본 사회 고유의 특징까지 겹쳐 일본을 이해하고 관계를 맺으려면 곳곳에서 걸림돌을 마주하게 된다.좋든 싫든 ‘가장 가까운 이웃’인 일본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책 세 권이 새로 나왔다. 무턱대고 일본을 찬양하거나 막연한 우월감을 조장하는 것이 아니라 일본의 ‘진면모’를 짚고자 노력한 책이어서 의미가 더욱 깊다.《알면 다르게 보이는 일본 문화》(이경수 외 지음, 지식의 날개)는 45명의 한국인과 일본인 전문가들이 다각도로 파헤쳐본 일본 이해 ‘가이드북’이다. 일상이 된 철도문화, 획일적이면서도 다채로운 란도셀(초등학생 책가방)과 인형, 다도와 마쓰리 같은 전통문화와 생활 양식부터 무사 문화와 메이지 유신의 주역을 찾아보는 역사여행까지 스펙트럼이 다양하다. 고령화 사회의 여러 모습, 일본인과의 비즈니스 팁, 일본식 표현 소개까지 전방위에서 일본을 이해하기 위한 메스를 들이민다.영화나 드라마로 낯익은 ‘도리아에즈 비루!(일단 맥주!)’로 시작해 ‘시메노라멘(마무리는 라멘)’으로 끝맺는 음주문화는 사람 사는 곳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을 확인시킨다. 반면 30만 개가 넘는 ‘성’부터 복잡한 한자 읽는 법은 같은 한자 문화권 내에도 큰 간극이 있음을 보여준다. 태어날 때는 신사에 가고, 결혼은 교회에서 하며, 장례는 불교식으로 치르는 일본인의 종교관은 일본 이해하기의 지난함을 상징한다.《일본은 우리의 적인가》(이덕훈 지음, 실크로드)는 승패의 논리인 ‘칼의 윤리’를 숭상한 일본과 대의명분을 따지는 선악의 논리인 ‘붓의 문화’로 맞선 한국 간의 갈등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를 모색한 작업이다. 친절한 외면과 달리 유명한 학자의 집이나 사업가의 집을 가리지 않고 모셔진 ‘일본도’를 통해 일본인의 뇌리에 깊이 각인된 사고방식을 파헤친다.‘칼의 윤리’는 패자에 대한 윤리와 도덕을 가르치지 않는다. 선악의 기준보다 승패가 우선한다. 그런 사고방식 속에서 일본의 역사가 쓰였고, 정치와 경제가 작동했다. 우리와 다른 일본의 진면목을 살피는 데서 일본에 대응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저자는 주문한다. 도식적이라는 느낌도 없지 않지만 ‘일본을 이해해야 일본을 이길 방법을 찾을 수 있다’는 주장이 일관되게 제시된다.《유토피아 문학》(이명호 외 지음, 알렙)은 유토피아 문학의 세계지도를 그려본 작품이다. 엄밀히 따지면 일본 연구서는 아니다. 하지만 ‘이상향’을 갈구하는 데 일본이라고 예외일 수 없다.1909년 나가이 가후의 “일본인은 행복한 유토피아의 백성입니다”라는 발언에서 시작해 무샤노코지 시네아쓰의 ‘새로운 마을’, 사토 하루토의 ‘아름다운 마을’ 등으로 이어진 20세기 초반 일본 유토피아 문학의 양상은 특수하면서 보편적이다. 근대화와 자본주의, 사회주의 사상의 유입과 함께 농촌사회에 대한 동경이 섞인 20세기 초 일본인의 정신세계는 복합적 존재로서 일본인의 특징을 부각한다.김동욱 기자 kimdw@hankyung.com
K팝, K드라마, K방역, K뷰티…. 수많은 사람이 접두사 ‘K’를 활용한 단어들을 얘기한다. K의지, K직장인, K가족 등 일상에서 ‘말놀이’처럼 확산되고도 있다. 이 같은 K열풍의 근원은 뭘까. 그 이면에 숨겨진 의미는 무엇일까.《K를 생각한다》는 대한민국을 뜨겁게 달군 ‘K’라는 키워드를 정면으로 겨냥해 그 현상에 담긴 의미를 분석한다. 서울대 아시아언어문명학부 등에서 문명과 역사, 사회와 국제정세 등을 공부한 1994년생 임명묵 작가가 썼다.저자는 자신의 또래인 1990년대생을 중심으로 이 현상이 일어난 원인을 분석한다. 이들은 살벌한 경쟁의 피라미드에서 떠밀려 내려가지 않으려는 강한 불안감에 휩싸여 있다. “한강물 아니면 한강뷰”라는 자조와 함께 ‘한탕’을 꿈꾸기도 하고, 때론 불공정에 대해 분노하기도 한다.이들을 둘러싼 미디어 환경은 치열하게 펼쳐지는 경쟁을 더욱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1990년대생은 인격적 완성을 이루기 전인 청소년기부터 스마트폰이라는 강력한 무기에 노출된 최초의 세대다. 저자는 “이들은 자신의 존재가 실시간으로 외부에 전시되고 그것이 하나의 유행으로 권장되고 있는 것을 체험하고 있다”며 “그 과정에서 다른 사람과 스스로를 끊임없이 비교해야 한다”고 설명한다.1990년대생은 인터넷에서 자신의 감각을 충족시키는 모든 것을 찾을 수 있는 세대이기도 하다. 1990년대생의 노력과 경쟁, 발전에 대한 압박은 웹툰과 웹소설 등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저자는 “이로부터 K콘텐츠의 신화가 만들어지고 있다”며 “그 신화 너머엔 1990년대생의 집단적이고 고독한 비명이 계속되고 있다”고 주장한다.1990년대생이 생각하는 국가의 의미도 짚어본다. 이들은 국가를 불신하면서도 자신들이 그나마 신뢰할 수 있는 것은 국가 시스템이라고 생각한다. K방역이라 불린 현상도 이런 심리를 바탕으로 한다. 저자는 강조한다. “K를 이해하는 것은 곧 오늘날의 세계를 이해하는 단서가 될 수 있다. 반대로 오늘날의 세계를 아는 것은 우리 자신이 누구인지에 대해서도 알려준다.”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
“음악은 어떻게 들어야 할까요? 음악을 한다는 건 다른 사람의 소리를 주의 깊게 듣는 겁니다. 인생을 살아갈 때도 다른 사람의 말을 들을 줄 알아야 해요.”지휘자 클라우디오 아바도(1933~2014)는 어린이들을 위한 그림책 《음악의 집》을 쓴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아이들에게 음악 듣는 법을 가르쳐 다른 이와 소통할 줄 아는 어른으로 키우려 한 것이다. 그가 책을 쓴 건 1986년. 밀라노의 라 스칼라 필하모니와 런던 심포니, 빈 국립오페라단 등 명문 악단들의 예술감독을 겸임할 때였다. 단원을 지도하기에도 벅찼지만 미래의 음악가들을 위해 책을 썼다.아바도는 20세기를 주름잡았던 마에스트로다. 카라얀처럼 카리스마가 넘치진 않았다. 민주적인 탈권위주의자였다. 그는 단원 모두와 소통하려 노력했다. 베를린필하모닉 단원들이 1989년 처음 지휘자 투표권을 얻었을 때 모두 아바도를 선택했던 이유다. 평단에선 그를 ‘조용한 혁명가’라 불렀다.책 곳곳에서 어린이에 대한 애정이 드러난다. 그는 어린아이의 시선으로 클래식을 사랑하는 방법을 세밀하게 알려준다. 독주와 실내악, 오케스트라 등이 어떻게 구성됐고 어떤 곡부터 들어야 하는지를 친절한 문체로 소개한다. 미술작가인 파올로 카르도니의 따스한 그림도 어린이들의 이해를 돕는다. 오케스트라에 동원되는 모든 악기를 자세하게 묘사했다.책은 국내 대표 예술살롱인 풍월당이 이탈리아 출판사 가르잔티와 출판권을 독점 계약해 들여왔다. 책을 내기 위해 내로라하는 국내 음악가를 동원했다. 베네치아국립대에서 이탈리아 문학을 전공한 이기철 서울대 언어학과 교수가 번역을 맡았고, 나성인 음악평론가가 감수했다. 나 평론가는 “아바도는 클래식을 어떻게 들어야 하는지 알려주지 않고 음악 감상의 즐거움을 논한다”며 “클래식이 어렵다는 편견을 깨고 호기심을 일깨우는 책”이라고 했다.어른들에게도 의미가 깊은 책이다. 음악을 아는 관객이 되려 하지 말고 즐기는 사람이 되라고 한다. 아바도는 책 마지막에 이런 말을 남겼다. “음악은 언어처럼 우리 역사 그리고 우리 자신을 이야기해줍니다. 저도 ‘듣는 법’을 배우려 노력합니다.”오현우 기자 o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