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세계 최초 자율주행 상용화를 재차 천명하고 나선 가운데, 지원 예산 규모를 두고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지원금이 터무니없이 적다는 평가와 주도권이 정부에 쏠릴 경우 시장 논리보다 정치 논리가 앞설 수 있다는 게 업계의 고민이다. 전문가들은 “단순 투자보다 규제 완화 등 환경 조성에 주력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세계 최초 상용화'에만 목매는 정부…규제부터 풀어주고, 민간에 맡겨야
27일 정보기술(IT)업계에 따르면 정부는 최근 산업통상자원부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 4개 부처를 주축으로 ‘자율주행기술개발혁신사업단’을 출범시키고, 관련 예산 계획을 수립하고 있다. 2027년까지 약 6년간 1조974억원의 예산을 투입해 차량융합 신기술, 도로교통 융합 신기술, 서비스 창출 등 84개 과제를 지원하는 게 골자다.

정부의 의지는 확고하다. 지난 16일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제8차 혁신성장 BIG3 추진 회의’에서 또다시 자율주행 서비스 조기 상용화 목표를 강조했다. “6개 자율주행 시범 운행지구에서 상반기 유상 실증 서비스를, 하반기에는 규제와 법령 정비를 추진하겠다”는 것이 주요 계획이다. 이를 위해 2025년까지 미래차 연구개발(R&D)을 점차 늘려나가겠다고 했다.

업계에선 공통적으로 예산 규모에 대한 우려를 나타냈다. 엄청난 재원이 필요한 기술 특성상 ‘마중물 역할’이란 긍정적 순기능을 빼면 실질적 성과를 기대하기 어려운 금액이라는 지적이다. 올해 기준 정부가 공고한 자율주행 관련 지원 금액은 차량융합 신기술 15개 과제에 182억원, 정보통신기술(ICT) 13개 과제에 210억원, 도로교통 융합 신기술 11개 과제에 202억원 등 총 851억원이다. 단순 추산했을 때 과제당 10억~20억원이 투자되는 셈이다.

문제는 주요 사업 내용이 영상인식 처리, 핵심 인지센서 모듈, 인공지능(AI) 기반 고성능 컴퓨팅 등 만만치 않은 핵심 기술로 구성돼 있다는 점이다. 이호근 대덕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기술을 다 갖춘 완성차 업체가 엔진 개발, 섀시 변경 등을 통해 신모델 하나 출시하는 데만 3500억원의 비용이 든다”며 “전체 지원금이 1조원이라면 턱없이 적은 규모”라고 말했다.

민간 업체들이 주요 기술을 이끌 환경을 조성하고, 정부는 통신과 도로 등 인프라 구축 영역에 집중하는 방안이 해법으로 제시된다. 이경전 경희대 경영학과 교수는 “정부는 민간의 자금을 끌어와 시장이 효율적으로 형성될 수 있도록 하는 역할만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시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