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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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주운전을 한 뒤 차를 들이받은 후 뺑소니를 했더라도 사건 정황 등을 고려해 무조건 가중처벌을 할 수는 없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제2부(주심 노정희 대법관)는 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위반(도주치상), 도로교통법위반(사고후미조치), 도로교통법위반(음주운전), 도로교통법위반(무면허운전) 등의 혐의로 재판을 받아온 A씨에 대해 1년3개월 징역형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도주치상 부분을 파기했다고 4일 밝혔다.

트럭 운전기사인 A씨는 2019년 혈중 알콜 농도 0.049%인 상태로 운전을 하다가 중앙선을 넘어 맞은편에서 오는 차를 들이받았다. 그는 피해자들이 경찰에 사고 신고를 하려고 하자 이를 막으려하다가, 신고가 접수되자 자신의 신원을 밝히지 않고 트럭을 그대로 둔 채 사고 장소에서 도주했다. A씨는 이미 네 차례 음주운전 전력으로 징역 9개월예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상태였다. 다만 음주운전으로 처벌받는 기준은 혈줄 알콜 농도가 0.05% 이상인 경우다.

1심은 A씨에게 징역 1년3개월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음주운전으로 집행유예 기간 중인데도 음주 후 무면허운전을 해 엄중한 처벌 필요하다"면서도 "피해자들이 사고로 인해 2주 진단을 받았으나, 사고 당시 구호 등의 조치가 필요한 정도로 상해를 입었음에도 A씨가 이에 대응하지 않고 도주의 고의로 사고현장을 떠났다고는 볼 수 없다"며 도주치상 부분은 무죄로 판단했다.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제5조의3(도주차랴 운전자의 가중처벌)에 따르면 피해자를 사망에 이르게 하고 도주하거나, 도주 후에 피해자가 사망한 경우에는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 피해자가 다친 경우에는 1년 이상의 유기징역 또는 500만원 이상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되어있다.

그러나 2심은 다르게 봤다. 2심 재판부는 "피해자들이 교통사고로 상해를 입었다고 볼 수 있고, A씨의 도주에 고의성이 있다고 인정된다"며 특가법 위반죄가 성립된다고 했다.

A씨는 피해자들을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관이 주변 마을 사람들을 탐문을 할 때야 사고 현장에 돌아왔는데, 현장에 서 40분 가량 모습을 감췄다는 점에서 특가법 적용이 타당하다고 봤다.

판단은 대법원에서 다시 뒤집혔다. "도주치상죄는 사고의 경위와 피해자의 상해 정도 등을 고려해야 한다"고 본 것이다. 대법 재판부는 '피해자 구호 조치를 할 필요가 있는지의 여부'에 집중했다. 재판부는 "이러한 구호 조치 필요성이 인정되지 않을 때는 사고 운전자가 피해자에게 인적사항을 제공하는 조치를 이행하지 않고 장소를 떠났더라도 특가법 5조의3 1항 위반죄 성립하지 않다"고 보고 기존 판결을 깨고 원심법원에 돌려보냈다.

안효주 기자 j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