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철 생태 고려 않은 조치" vs "ASF 차단 시급·로드킬 방지 효과도"
지난 27일 오후 강원 춘천시 사북면 고탄리의 도로를 지나던 중 갓길을 따라 질주하는 야생 고라니를 발견했다.

이 고라니는 아프리카돼지열병(ASF) 차단을 위해 설치한 철제 울타리가 쳐진 도로를 따라 달리며 다시 산으로 향하고자 했지만, 꽉 막힌 울타리 때문에 길을 찾지 못했다.

좁은 도로 위 고라니의 질주는 빠르게 오가는 차량과 부딪힐 듯 아슬아슬했고 급한 마음에 울타리에 몸을 던지기도 했다.

겨우 작은 구멍을 찾아 앞다리를 욱여넣었지만, 그 틈은 턱없이 좁았다.

결국 고라니는 철조망에 몸이 껴버리고 말았다.

ASF를 차단하고자 강원도 내 야산과 양돈 농가를 따라 설치한 철제 울타리가 멧돼지 외 다른 야생동물들의 이동을 막아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겨울철 야산에 서식하는 고라니 등 야생동물은 인근 냇가에 내려와 물을 마시거나 저지대까지 내려와 먹이를 찾곤 하는데 울타리로 인해 산에서 내려오지 못하고, 어렵게 내려오더라도 다시 올라갈 길을 잃고 로드킬 등 위험에 노출된 실정이다.

최근 화천 풍산리 도로에서도 고라니 한 마리가 ASF 울타리 너머 산으로 가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다 길가 도랑에 빠져 갇혔다.

이 일대에서는 멸종위기1급이자 천연기념물 제217호로 지정된 산양이 울타리 때문에 길을 잃은 모습이 영상에 찍히기도 했다.

강원도는 ASF의 확산과 양돈 농가로의 유입을 막고자 1·2차 울타리와 광역 울타리를 설치해 다중 차단 방역을 벌이고 있다.

1·2차 울타리는 385㎞, 광역 울타리는 862㎞가 설치돼 있다.

철저한 차단을 위해 생태통로 등은 마련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ASF 차단에만 치우쳐 야생동물의 겨울나기를 위협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도내 야생동물 구조 전문가는 "대부분 울타리가 도로를 따라 설치됐고 그 너머로 농경지나 하천이 많은데 이는 야생동물의 월동에 큰 방해가 된다"며 "차를 피하지 못한 동물의 생명에도 위협을 줄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에 대한 반론도 제기된다.

ASF는 국가 재난으로 차단이 시급했고 울타리가 오히려 로드킬 예방 효과를 불러올 수 있다는 것이다.

한 동물 전문가는 "ASF라는 국가 재난 사태는 신속한 차단이 우선이기에 국·공유지인 도로는 울타리 설치에 용이하다"며 "울타리가 오히려 야생동물의 도로 유입을 막아 로드킬 위험을 줄여주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어 "울타리를 장기적으로 설치해야 한다면 생태계에 근본적인 문제를 야기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진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덧붙였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