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고라니는 아프리카돼지열병(ASF) 차단을 위해 설치한 철제 울타리가 쳐진 도로를 따라 달리며 다시 산으로 향하고자 했지만, 꽉 막힌 울타리 때문에 길을 찾지 못했다.
좁은 도로 위 고라니의 질주는 빠르게 오가는 차량과 부딪힐 듯 아슬아슬했고 급한 마음에 울타리에 몸을 던지기도 했다.
겨우 작은 구멍을 찾아 앞다리를 욱여넣었지만, 그 틈은 턱없이 좁았다.
결국 고라니는 철조망에 몸이 껴버리고 말았다.
ASF를 차단하고자 강원도 내 야산과 양돈 농가를 따라 설치한 철제 울타리가 멧돼지 외 다른 야생동물들의 이동을 막아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겨울철 야산에 서식하는 고라니 등 야생동물은 인근 냇가에 내려와 물을 마시거나 저지대까지 내려와 먹이를 찾곤 하는데 울타리로 인해 산에서 내려오지 못하고, 어렵게 내려오더라도 다시 올라갈 길을 잃고 로드킬 등 위험에 노출된 실정이다.
최근 화천 풍산리 도로에서도 고라니 한 마리가 ASF 울타리 너머 산으로 가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다 길가 도랑에 빠져 갇혔다.
이 일대에서는 멸종위기1급이자 천연기념물 제217호로 지정된 산양이 울타리 때문에 길을 잃은 모습이 영상에 찍히기도 했다.

1·2차 울타리는 385㎞, 광역 울타리는 862㎞가 설치돼 있다.
철저한 차단을 위해 생태통로 등은 마련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ASF 차단에만 치우쳐 야생동물의 겨울나기를 위협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도내 야생동물 구조 전문가는 "대부분 울타리가 도로를 따라 설치됐고 그 너머로 농경지나 하천이 많은데 이는 야생동물의 월동에 큰 방해가 된다"며 "차를 피하지 못한 동물의 생명에도 위협을 줄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에 대한 반론도 제기된다.
ASF는 국가 재난으로 차단이 시급했고 울타리가 오히려 로드킬 예방 효과를 불러올 수 있다는 것이다.
한 동물 전문가는 "ASF라는 국가 재난 사태는 신속한 차단이 우선이기에 국·공유지인 도로는 울타리 설치에 용이하다"며 "울타리가 오히려 야생동물의 도로 유입을 막아 로드킬 위험을 줄여주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어 "울타리를 장기적으로 설치해야 한다면 생태계에 근본적인 문제를 야기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진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