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시 유일 조선 시대 사찰 '비암사 극락보전' 보물 된다(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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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출범 후 첫 건축문화재 보물 지정…조선시대 사찰 문화재 이해에 기여"
세종시에 남아있는 유일한 조선 시대 사찰인 '비암사 극락보전'이 보물이 된다.
세종시는 시 지정 유형문화재 제1호인 비암사 극락보전이 보물로 지정 예고됐다고 24일 밝혔다.
전의면 다방리에 위치한 비암사는 통일신라 때 도선국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지나 이외에도 여러 창건설이 있어 창건 시기가 확실하지는 않다.
문화재청은 "그러나 673년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계유명전씨아미타불비상(국보 제106호)이 이곳에서 출토됐고, 현재 이 지역에서 비암사를 '삼한고찰'(三韓古刹)로 부르는 것을 볼 때 창건 시기는 고대(古代)인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극락보전은 정면 세 칸, 측면 두 칸에 지붕 처마를 받치는 부재를 기둥과 기둥 사이 배치한 다포계 양식의 팔작지붕 건물이다.
문화재청은 일반적인 불전은 측면이 3칸인데 극락보전을 2칸으로 지은 것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이후 사찰이 경제적으로 어려웠기 때문으로 추정했다.
극락보전에 모셔져 있는 소조아미타여래좌상(시 유형문화재 13호), 영산회괘불탱화(시 유형문화재 12호)는 17세기 조성된 것으로 추정돼 극락보전이 17세기에 창건됐을 것으로 여져진다.
극락보전은 공포(지붕 하중을 받치는 구조물)를 꾸미는 부재들의 구성이나 모양이 조선 중기 이후 다포(공포가 여러개인 양식) 건축물의 특징을 보여준다.
특히 기둥 상부와 지붕 사이에 층층이 쌓아 올려 공포를 꾸민 부재인 첨차는 크기가 대·중·소인 것을 모두 사용했다.
창호의 경우 건물 앞쪽은 문짝이 칸마다 4개씩으로 구성돼 있다.
칸마다 중앙에 여닫이문 두 짝을 설치하고 좌우에 문설주를 세웠으며, 그 바깥에는 여닫이문 한 짝씩을 달았다.
건물 뒤쪽은 창호 가운데 기둥을 세운 영쌍창을 설치했다.
문화재청은 "건립 당시 제작한 창호는 아니지만 뚜렷한 근거를 토대로 원형을 되살렸다는 점에서 극락보전의 건립시기에 걸맞는 외관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극락보전 내부 천장에 대들보와 직각을 이루는 부재인 충량을 좌우에 3개씩 설치한 것도 특징이다.
충량은 한쪽 끝은 기둥 위에 연결하고 다른 한쪽 끝은 보에 걸친 측면의 보를 말한다.
보통 불전은 충량을 한 개만 설치하는데 좌우에 3개씩 둔 것은 두 칸으로 건축한 불전의 측면을 구조적으로 보완해 추녀의 하중을 지탱하기 위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문화재청은 설명했다.
문화재청은 "사찰 창건이나 극락보전의 조성·중수 등에 대한 정확한 기록은 없으나 17세기 중엽 지방 사찰 불전의 특성과 지역색을 잘 간직하고 있다는 점에서 국가지정문화재로서 가치가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비암사에서는 앞서 삼국시대 유물인 계유명 전씨 아미타불 비상, 기축명 아미타불 비상이 출토되기도 했다.
극락보전은 앞으로 30일 동안 보물 지정 예고기간을 거쳐 국가지정문화재 보물로 승격·지정된다.
세종시 관계자는 "시 출범 이후 건축물로는 처음으로 국가 보물이 탄생했다"며 "조선 시대 사찰 문화재를 이해하는데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
세종시는 시 지정 유형문화재 제1호인 비암사 극락보전이 보물로 지정 예고됐다고 24일 밝혔다.
전의면 다방리에 위치한 비암사는 통일신라 때 도선국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지나 이외에도 여러 창건설이 있어 창건 시기가 확실하지는 않다.
문화재청은 "그러나 673년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계유명전씨아미타불비상(국보 제106호)이 이곳에서 출토됐고, 현재 이 지역에서 비암사를 '삼한고찰'(三韓古刹)로 부르는 것을 볼 때 창건 시기는 고대(古代)인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극락보전은 정면 세 칸, 측면 두 칸에 지붕 처마를 받치는 부재를 기둥과 기둥 사이 배치한 다포계 양식의 팔작지붕 건물이다.
문화재청은 일반적인 불전은 측면이 3칸인데 극락보전을 2칸으로 지은 것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이후 사찰이 경제적으로 어려웠기 때문으로 추정했다.
극락보전에 모셔져 있는 소조아미타여래좌상(시 유형문화재 13호), 영산회괘불탱화(시 유형문화재 12호)는 17세기 조성된 것으로 추정돼 극락보전이 17세기에 창건됐을 것으로 여져진다.
극락보전은 공포(지붕 하중을 받치는 구조물)를 꾸미는 부재들의 구성이나 모양이 조선 중기 이후 다포(공포가 여러개인 양식) 건축물의 특징을 보여준다.
특히 기둥 상부와 지붕 사이에 층층이 쌓아 올려 공포를 꾸민 부재인 첨차는 크기가 대·중·소인 것을 모두 사용했다.
창호의 경우 건물 앞쪽은 문짝이 칸마다 4개씩으로 구성돼 있다.
칸마다 중앙에 여닫이문 두 짝을 설치하고 좌우에 문설주를 세웠으며, 그 바깥에는 여닫이문 한 짝씩을 달았다.
건물 뒤쪽은 창호 가운데 기둥을 세운 영쌍창을 설치했다.
문화재청은 "건립 당시 제작한 창호는 아니지만 뚜렷한 근거를 토대로 원형을 되살렸다는 점에서 극락보전의 건립시기에 걸맞는 외관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극락보전 내부 천장에 대들보와 직각을 이루는 부재인 충량을 좌우에 3개씩 설치한 것도 특징이다.
충량은 한쪽 끝은 기둥 위에 연결하고 다른 한쪽 끝은 보에 걸친 측면의 보를 말한다.
보통 불전은 충량을 한 개만 설치하는데 좌우에 3개씩 둔 것은 두 칸으로 건축한 불전의 측면을 구조적으로 보완해 추녀의 하중을 지탱하기 위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문화재청은 설명했다.
문화재청은 "사찰 창건이나 극락보전의 조성·중수 등에 대한 정확한 기록은 없으나 17세기 중엽 지방 사찰 불전의 특성과 지역색을 잘 간직하고 있다는 점에서 국가지정문화재로서 가치가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비암사에서는 앞서 삼국시대 유물인 계유명 전씨 아미타불 비상, 기축명 아미타불 비상이 출토되기도 했다.
극락보전은 앞으로 30일 동안 보물 지정 예고기간을 거쳐 국가지정문화재 보물로 승격·지정된다.
세종시 관계자는 "시 출범 이후 건축물로는 처음으로 국가 보물이 탄생했다"며 "조선 시대 사찰 문화재를 이해하는데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