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도네시아의 한인 역사가 시작된 것은 3·1운동 자금을 지원한 장윤원(張潤遠·1883∼1947) 선생이 망명 생활을 하다 1920년 9월 20일 자카르타에 도착한 사건을 기점으로 한다.
1910년대에 조선의 인삼 상인들이 인도네시아를 다녀가기도 했으나 이곳에서 결혼해 정착한 한인은 장 선생이 최초다.

박재한 한인회장은 "일제강점기에 이름조차 낯설던 인도네시아 땅에 조선인 군속을 비롯해 수많은 한인이 징용의 세월을 살고, 전범 재판에 몰려 목숨을 잃었다"며 "그리고 새로운 미래를 찾아온 개척자들로 본격적인 인도네시아 한인사회가 만들어졌다"고 밝혔다.
이어 "책 한 권에 모든 한인사를 담을 수는 없지만, 적어도 선배들이 걸어온 길에 밝은 조명 한 줄기를 비추는 의미가 되리라 자부한다"고 강조했다.
박태성 주인도네시아 대사는 이날 기념식에서 "기록된 역사가 없는 민족은 사라질 수밖에 없다"며 "100년사를 통해 한인 동포 사회는 미래를 향해 전진할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했다.
임성남 주아세안 대사는 "아세안에서 한인 사회가 어떻게 성장하고, 발전해왔는지를 기록한 의미 있는 첫 번째 시도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사공경 수석집필위원은 화상 메시지를 통해 "한인 100년사를 통해 오랑 꼬레아(한국인)의 뿌리를 재발견하고, 새로운 100년을 만들어나가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그는 체포령을 피해 만주로 탈출한 뒤 1920년 당시 인도네시아를 식민지배하던 네덜란드 총독부 고위관리의 권유로 망명했다.
일본은 1942년 3월 인도네시아를 점령하자마자 장 선생과 장남을 체포했다.
장 선생은 1945년 8월 종전으로 출옥한 뒤 조선인 포로 감시원들의 구명과 민간인 귀환 문제를 해결하려고 뛰어다니다 고문 후유증 등으로 1947년 11월 65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장윤원 선생의 차남 장순일은 1960년 인도네시아에 설립된 가톨릭계 대학 아뜨마 자야(ATMA JAYA)의 공동 창립자 12명 가운데 한 명으로, 초대 공대학장과 재단 부이사장을 지냈다.

포로 감시원 가운데 양칠성은 일본 패망 후 재지배를 꿈꾸는 네덜란드에 맞서는 인도네시아 독립군에 합류해 폭탄 전문가로서 이름을 날리고, 외국인 독립 영웅으로 추서됐다.

100년사는 기존 자료를 인용해 충남 서산 출신 여성 신모씨가 1942년 3월 취업을 미끼로 일본 경찰에 유인돼 자카르타로 끌려온 뒤 지금의 대통령궁 인근 위안소에서 생활하다 1944년 8월 19일 사망한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또, 자바섬뿐만 아니라 수마트라섬 팔렘방, 암본, 보르네오섬 발릭파판 등에도 조선인 위안부가 끌려왔던 것으로 추정했다.
이밖에 종전 후 인도네시아 연극영화계 대부로 꼽힌 허영, 포로 감시원이면서 네덜란드인 포로들을 도와 은인이 된 김만수, 포로감시원으로 왔다 현지 최초의 속옷(메리야스) 공장을 세운 유형배 등이 소개됐다.

한국·한인 기업들은 자원개발에 이어 1980년대 중반부터 신발·봉제·섬유업에 투자했고, 1980년대 말 삼성전자·LG전자, 2000년대 포스코, 롯데그룹, 한국타이어 등이 진출한 뒤 작년부터 현대자동차가 서부 자바에 완성차 공장을 짓고 있다.
한인 100년사 편찬위는 "현지에서 맨땅에 일군 한인 토종 기업의 눈부신 자력 성장과 모국 대기업의 투자는 관련 기업 동반성장의 원동력이 돼 양적으로 성장하는 계기가 됐다"며 "올해 기준 인도네시아의 한인기업 2천여 개가 현지인 100만여 명을 고용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편찬위는 자부심을 가지면서도 "무명 한인들의 숨겨진 이야기까지 세세히 담지 못해 아쉽다"며 "한인사의 진정한 영웅은 이국땅에서 자신들의 삶을 열심히 꾸려나간 무명의 한인들이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100년사 표지에는 장윤원·양칠성·정서운 할머니와 역대 한인회장인 최계월·승은호·신교환씨의 모습이 담겼고, 뒷면에는 한인회장 가운데 신기엽·양영연·박재한 회장의 모습이 그려졌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