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요의 시대…욕망과 싸우는 원더우먼
미국 만화 ‘DC코믹스’의 여성 히어로 원더우먼에 관한 속편 영화 ‘원더우먼 1984’(패티 젠킨스 감독·23일 개봉·사진)는 풍요의 시대에 넘쳐나는 욕망과 대적하는 액션 영웅의 이야기다. 영화는 ‘진실’을 화두로 미국의 힘과 자긍심이 정점을 찍었던 레이건 대통령 시대에 어떤 희생과 대가를 치렀는지 성찰하도록 이끈다.

인류학자이자 고고학자인 다이애나(원더우먼·갤 가돗 분) 앞에 소원을 빌면 이루게 해주는 보물이 나타난다. 다이애나에게는 그리워하던 옛 연인 스티브가 돌아온다. 지질학자 바바라 미네르바(크리스틴 위그 분)는 평소 흠모하던 다이애나처럼 매력과 파워를 겸비한 여성으로 변한다. 사기꾼 석유업자 맥스 로드(패드로 파스칼 분)는 진짜 유전을 갖게 된다. 신통방통한 보물 덕분이다. 하지만 미네르바와 로드는 동시에 빌런(악당)으로 변화한다. 인간의 욕망을 대변하는 악당이다. 미네르바는 외모 콤플렉스를 탈피하려는 여성성을, 로드는 무한한 소유욕을 드러낸다. 보물은 하나를 얻으면 다른 하나를 희생하도록 요구한다. 다이애나도 이 요구를 피해갈 수 없다. 개인들의 욕망은 국가 간의 탐욕전으로 확장한다.

대규모 물량을 쏟아부은 액션 신이 압도적이다. 특히 도입부의 아마존 경기 장면은 놓칠 수 없는 볼거리다. 38명의 여성 스턴트 배우들이 격투 신과 액션 신에서 열연한 이 장면은 창의적이고 강렬하다. 하지만 대부분 액션 신은 박진감이 전편보다 못하다.

워너브러더스가 배급하는 이 영화는 오는 25일 미국에서 극장과 자사 인터넷동영상서비스(OTT) HBO맥스에서 동시 개봉한다. 미국 버라이어티지는 “극장 수익을 포기하는 대신 HBO맥스 구독자를 확대하기 위한 조치”라고 보도했다.

워너미디어 계열 HBO맥스 가입자는 지난 9월 말 현재 860만 명에 그쳐 11월 기준 7370만 명인 디즈니플러스에 크게 뒤져 있다. 워너브러더스가 내년 개봉할 영화를 모두 극장과 HBO맥스에서 동시 개봉할 것이라고 밝힌 이유다. 여기에는 ‘고질라 vs 킹콩’ ‘듄(Dune)’ ‘매트릭스4’ ‘더 수어사이드 스쿼드’ 등 17편의 블록버스터급 영화가 포함된다.

모든 영화는 극장과 HBO맥스에서 동시 개봉한 뒤 한 달 후 HBO맥스에서는 내려진다. 홀드백(유예) 기간을 거친 뒤 다시 올라간다. 지금까지 할리우드 신작은 극장 개봉 후 약 90일간의 유예 기간을 거쳐 스트리밍 서비스에 공개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이 때문에 현장 판매 감소에 따른 보상과 관련해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 등 영화 제작자들의 비판이 거세지고 있다.

유재혁 대중문화 전문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