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평양 남북 정상회담 당시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김여정 북한 노동당 제1부부장과 함께 식사하는 모습. KBS 뉴스 화면 캡쳐
2018년 평양 남북 정상회담 당시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김여정 북한 노동당 제1부부장과 함께 식사하는 모습. KBS 뉴스 화면 캡쳐
김여정 북한 노동당 제1부부장이 북한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응과 관련한 강경화 외교부 장관의 발언을 돌연 ‘망언’이라며 비난 담화문을 발표했다. 나흘 전 발언에 대한 비난 담화가 마침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부장관 겸 북한특별대표가 방한한 날 나오며 북한이 강 장관을 공격하는 모양새를 취하며 사실은 미국을 겨냥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김여정은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지난 8일 발표한 담화에서 “남조선 외교부 장관 강경화가 중동 행각 중에 우리의 비상방역 조치들에 대하여 주제넘은 평을 하며 내뱉은 말들을 보도를 통해 구체적으로 들었다”며 “앞뒤 계산도 없이 망언을 쏟는 것을 보면 얼어붙은 북남관계에 더더욱 스산한 냉기를 불어오고 싶어 몸살을 앓는 모양”이라고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김여정의 이 날 담화는 강 장관의 지난 5일 중동 순방 중 발언을 문제 삼았다. 강 장관은 이날 국제전략문제연구소(IISS)와 바레인 정부가 공동으로 주최한 국제 안보포럼인 마나마 대화에 참석해 ‘코로나19 상황에서의 글로벌 거버넌스’라는 주제로 연설에 나섰다. 강 장관은 연설이 끝난 뒤 북한의 코로나19 관련 상황을 묻는 질문에 “우리가 코로나19 대응을 돕겠다고 제안했으나 북한은 반응하지 않는다”면서 “이 도전(코로나19)이 북한을 더욱 북한답게 만든 것 같다”고 답했다.

강 장관은 이어 북한의 폐쇄적 태도가 “조금 이상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북한은 여전히 어떠한 (확진) 사례들도 없다고 말하지만 믿기 어렵다”며 “북한 정권이 스스로 없다고 얘기하는 그 질병을 통제하는 데 매우 집중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정황들이 있다”고 말했다.

김여정은 이를 두고 “속심이 빤히 들여다보인다”며 맹비난했지만 강 장관의 이날 발언은 북한과의 보건협력을 강조하는 맥락 속에서 나왔다. 강 장관은 이 발언 직후 “우리는 코로나19에 관해 도움을 줄 준비가 돼 있다”며 “북한을 지역 보건 협력체에 초대했다”고 덧붙였다. ‘우리가 도와줄테니 숨지 말고 나오라’는 메시지를 북한은 망언이라고 비판한 것이다.

이에 대해 김여정의 담화가 강 장관을 비판하는 모양새를 취하며 사실은 미국을 겨냥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김여정의 담화문은 비건 부장관이 한국에 도착한 지난 8일자로 작성돼 최종건 외교부 1차관과의 한·미 외교차관회담 직전에 공개됐다. 논란이 된 강 장관의 발언이 나온 시점으로부터 거의 만 나흘 가까이가 지난 이후다.

의도적으로 남북한 관계의 긴장을 조성해 2018년부터 미국의 대북(對北) 정책을 총괄해온 비건 부장관에게 적극적인 협상에 나서라는 메시지를 보낸다는 해석이다. 박원곤 한동대 국제지역학과 교수는 “김여정은 지난 6월 이후 계속해서 대남(對南) 공세에 나서고 있는데 강 장관에 대한 발언은 뜬금없다”며 “비건의 현재 역할은 차기 행정부로의 인수인계인 만큼 김여정 담화에 대해 한국과 얘기하고 판단한 걸 갖고 워싱턴에서 바이든 인수팀에 전달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을 향한 무력도발의 리스크를 짊어지는 대신 대남 공세를 통해 조 바이든 차기 미 행정부를 압박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 정책이 결정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차기 행정부와의 미·북 관계를 자신들이 직접 끌고가겠다는 것이다. 박 교수는 “북한이 보내는 메시지가 단순히 한국한테만 보내는게 아니라 미국한테만 보내는게 있어서 큰 틀에서 읽어야된다”며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실험은 북한 입장에서도 부담이 크기 때문에 대남공세에 나서 긴장을 고조시킬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송영찬 기자 0ful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