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문' 담은 앨범…각자 얼굴 보는 거울 됐으면"
'37년만에 솔로' 김창완 "작심하니 비로소 할 얘기 생기더군요"
"아침에 일어나 틀니를 들고 잠시 어떤 게 아래쪽인지 머뭇거리는 나이가 되면 그때 가서야 알게 될 거야. 슬픈 일이지. 사랑 때문에 흘리는 눈물이 얼마나 달콤한지…"
깜빡 졸음에 꿈을 꾸는 것일까.

기타 소리와 함께 다정한 목소리가 시를 읊듯 가사를 쏟아낸다.

눈을 감고 듣고 있노라면 회한에 잠긴 노인의 쓸쓸함이 영화처럼 그려진다.

"어째, 라이브로 들으니까 CD보단 좀 낫죠?"
통기타를 치던 손을 멈춘 가수 김창완이 말을 건네자 노랫소리가 아득하게 멀어지며 번뜩 눈이 뜨인다.

◇ 밴드·연기·DJ 하지만…"숙제 안 하고 노는 기분 들었죠"
지난 15일 서초구 자택에서 만난 김창완은 인터뷰 중간중간 앉은 자리에서 기타를 연주하며 노래를 불렀다.

1983년 발표한 '기타가 있는 수필'에 실린 곡과 오는 18일 선보이는 '문'(門) 수록곡 그리고 튜닝을 핑계 삼은 연주곡까지.
김창완은 "요즘 노래 부르기가 그렇게 좋다.

꼭 산책하는 것 같다"며 아이처럼 웃었다.

"주책인가.

아무 데서나 노래하라고 하면 좋아라 해요…변한 게 있다면 예전에는 내가 이렇게 불러야지 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면, 이제는 내가 부르는 노래를 듣는 데 집중해요.

"
'문'은 김창완이 37년 만에 발표하는 솔로 앨범이다.

김창완은 산울림, 김창완밴드 등 음악 활동은 물론이고 연기와 DJ, 글쓰기도 하며 살았지만 "꼭 숙제를 끝내지 않고 노는 느낌"이었다고 했다.

그의 솔로 앨범을 집요하게 기다린 팬들에게 부채감도 들었다.

"'기타가 있는 수필'을 만들 즈음에는 제 안에 쌓인 이야기가 차고 넘쳤어요.

그런 이야기들을 통기타를 둘러메고 녹음실에 가서 불과 세시간 반 만에 앨범 하나로 만들었는데, 다시 그만큼 이야기가 채워진다는 게 쉽지가 않더라고요.

"
'37년만에 솔로' 김창완 "작심하니 비로소 할 얘기 생기더군요"
그러나 앨범을 만들자고 작심을 하자 할 이야기가 샘솟았고 노래를 턱턱 작곡해냈다.

남들이 보기엔 뚝딱뚝딱 만들어낸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매일같이 성찰하고 사유하면서 이야깃거리가 자신도 모르게 쌓인 덕분이었다.

11개 트랙 중 새롭게 만든 6곡은 불과 두 시간 만에 녹음을 끝냈다.

정제되고 완벽한 노래가 아니었지만, 다시 녹음하지 않았다.

"재녹음을 하면 점차 노래는 나아지겠지요.

근데 그러면 라이브한 맛이 사라지고 예민한 부분을 놓칠 수가 있어요"
그는 앨범 소개에서도 "순식간에 한 작업이라 작품 자체로 보면 더 다듬어야 할 수도 있다"며 "하지만 개칠 안 한 그림이라 생각하고 진심을 담았다"고 말했다.

◇ "멈춰있는 시간을 들여다본다는 것, 나를 대면한다는 것"
그렇게 앨범을 만들어 놓고 보니, 의도치 않게 '시간'이라는 주제가 앨범 전체를 관통하고 있었다.

지난해와 올해 들어 변화한 김창완의 시간관이 음반에 자연스레 밴 것이다.

그래서 앨범 이름도 '시간의 문'을 줄여 '문'이라고 지었고 부제도 '시간의 문을 열다'로 정했다.

"원래는 시간이란 흘려보내는 것이고 그렇게 속절없이 가는 것이라고 단정을 내렸는데, 그런 시간은 무의미하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내 안에 멈춰 있는 시간을 바라보는 것이 나를 대면하는 일이 아닐까? 그게 다른 말로는 고독이 아닌가? 하고 생각했죠."
타이틀곡 '노인의 벤치'에서부터 시간과 고독이 느껴진다.

저음의 보컬과 무심하게 툭툭 던지는 듯한 기타 사운드가 조화를 이룬다.

김창완은 "아주 아름다운 동화를 만들어야겠다고 작정하고" 상상력을 발휘해 이 노랠 만들었다.

남자가 벤치에서 여자를 만나 함께 앉고, 그녀의 주름을 통해 자기 자신의 세월을 본다는 내용이다.

1번 트랙인 '엄마, 사랑해요'는 가사가 없는 연주곡이다.

앨범 표지에 실긴 그림을 그린 작가가 매일 어머니의 모습을 그렸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느낀 뭉클함을 가사가 끼어들기 전에 멜로디로 완성했다.

이 밖에도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이들을 위로하는 '이 말을 하고 싶었어요'와 '먼길', 부모님에 연민 어린 시선을 보내는 '자장가','이제야 보이네', '보고 싶어' 등이 실렸다.

'37년만에 솔로' 김창완 "작심하니 비로소 할 얘기 생기더군요"
그는 오랫동안 앨범을 기다려준 팬들이 자신이 전하려는 바를 오롯이 받아들이며 음악을 감상하기를 바란다고 했다.

"내가 기다렸던 가수의 37년 전 젊은 모습과 비교하기보다는 이 앨범이 각자 본인들의 얼굴을 보는 거울이 됐으면 좋겠어요.

다음 앨범은…, 아마도 오래 걸릴 거에요.

"(웃음)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