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중산대 첸줘 박사, 6·25 전쟁 70주년 국제학술회의 발표
6·25 전쟁에 참전한 중국군 포로의 절반은 국공내전 시기 국민당 군 출신의 이른바 '해방전사(解放戰士)'였다는 분석이 나왔다.

중국 중산대학 첸줘(陳卓) 박사는 6·25전쟁70주년사업추진위원회 주최, 한국정치외교사학회·백봉정치문화교육연구원 주관으로 16일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에서 열린 국제학술회의 '6·25전쟁 70주년의 기억, 성찰, 그리고 평화를 위한 반성'에서 발표를 맡아 한국전쟁 당시 해방전사 출신 중국군 포로들을 조명했다.

마오쩌둥 당시 중국 사료는 '해방전사'를 국공 내전 당시 국민당 군 소속이었다가 "인민해방군에 체포된 자나 국민당 반동 군대로부터 해방된 후 교육을 받아 인민해방군에 가입한 병사"를 뜻한다고 정의한다.

중국공산당은 당초에는 포로 중 자발적인 참전자만 수용했으나, 국공내전 시기 이후에는 노약자·장애인을 제외하고는 원칙적으로 모두 공산당 군대에 편입시켰다.

이어 6·25전쟁이 발발한 이후 이들 '해방전사'를 대거 지원군으로 한반도에 투입했다.

일부 군단은 군단장이 공산당에 귀순해 국민당 군이 그대로 공산당 군으로 간판만 바꿔 달고 참전했고, '해방전사'들은 상대적으로 차지하는 비율이 낮았던 정예부대에서도 50∼60%에 달했다고 첸 박사는 언급했다.

전쟁 당시 중국군 포로는 2만1천704명이었는데, 미 육군 헌병사령부는 이들 가운데 국민당 군 출신자를 30% 정도로 집계했다.

그러나 첸 박사는 전쟁 후 대만으로 귀순한 포로에 대한 사후 조사 결과를 보면 국민당 군 출신자가 9천234명으로 전체의 약 42.5%였으며, 중국으로 송환된 '해방전사'들을 고려하면 전체 중국군 포로의 절반이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첸 박사는 "일부 포로들은 미군과 대만 정부 대표에게 직업을 군인이 아니라 농민·상인 등 다른 신분으로 숨겼을 가능성이 크다"고 추정했다.

첸 박사는 '해방전사'들이 전쟁 당시 배고픔과 국민당 군 출신으로 겪는 차별 등 때문에 사기가 저하돼 탈영하거나 투항하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