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할리우드 유리천장' 깨는 데 앞장 선 메릴 스트립
“진짜 못생겼네. 어디서 ‘이런 것’을 데리고 왔어?”

1976년 리메이크 영화 ‘킹콩’의 오디션 현장. 영화 제작자 디노 드 로렌티스가 한 배우를 두고 내뱉은 말이다. 상대방이 알아듣지 못하게 하려고 이탈리아어로 말했다. 하지만 배우는 곧장 이탈리아어로 쏴붙인다. “예쁘지 않아 죄송한데, 어쩝니까?” 주인공은 바로 메리 루이즈 스트립. 우리에겐 메릴 스트립으로 알려진 배우다.

엔터테인먼트 칼럼니스트 에린 칼슨이 쓴 《퀸 메릴》은 할리우드 대배우 스트립의 일생을 되짚어본다. 배우로서의 삶 이면에 숨겨진 그의 고뇌와 갈등을 전기로 풀어낸다.

스트립은 1977년 영화 ‘치명적 계절’로 데뷔한 뒤 43년 가까이 60여 편의 영화에 출연했다. 아카데미 시상식에 21차례나 후보로 지명돼 두 번의 여우주연상과 한 번의 여우조연상을 받았다.

누구나 그렇듯 배우 생활 초반은 초라했다. 자신의 능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해 예일대 드라마스쿨에 진학했다. 스트레스 탓에 위궤양까지 앓았다. 극장 홍보 아르바이트를 하던 중 1977년 영화 ‘줄리아’에 출연했고 ‘크레이머 대 크레이머’ ‘소피의 선택’ 등에 잇달아 주연으로 낙점됐다.

중견 배우로 성장했지만 맡을 배역이 많지 않았다. 저자는 할리우드에서 여배우를 과소평가하는 ‘유리천장’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45살이 된 메릴은 나이 든 여자를 무시하는 영화계 관행에 맞서 싸웠다” “최근에는 젊은 배우들이 다양한 역할을 맡도록 길을 터주는 데 힘을 쏟고 있다”고 말한다.

2017년에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언쟁으로 화제가 됐다. 트럼프가 SNS를 통해 “가장 과대평가된 여배우”라고 그를 비난했다. 당시 스트립이 힐러리 클린턴 지지를 표현했던 것을 의식한 것이다. 저자는 “메릴은 논란을 마다하지 않고 할 말은 한다. 다만 트럼프와는 다르다. 사람들을 부추겨 분노의 길로 이끌지 않는다”고 평가했다.

오현우 기자 o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