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야스디 창업자인 군나 칼슨 미국 스탠퍼드대 수학과 교수가 2018년 미 샌디에이고에서 열린 세계 최대 수학행사 ‘JMM(Joint Mathematics Meeting)’에서 위상수학을 주제로 강연하며 ‘쾨니히스베르크의 다리’ 문제를 설명하고 있다. 그는 27일 ‘스트롱코리아 포럼 2020’에서 기조연설자로 나선다.    유튜브 캡처
아야스디 창업자인 군나 칼슨 미국 스탠퍼드대 수학과 교수가 2018년 미 샌디에이고에서 열린 세계 최대 수학행사 ‘JMM(Joint Mathematics Meeting)’에서 위상수학을 주제로 강연하며 ‘쾨니히스베르크의 다리’ 문제를 설명하고 있다. 그는 27일 ‘스트롱코리아 포럼 2020’에서 기조연설자로 나선다. 유튜브 캡처
2016년 10월 스웨덴 왕립과학원의 노벨물리학상 발표 기자회견장에는 빵 세 개가 등장했다. 구멍이 없는 번, 1개 있는 베이글, 3개 있는 프레첼이었다. 그해 노벨물리학상 주제인 ‘위상수학(topology)’을 설명하기 위한 도구였다. 인간의 눈은 이들 빵에 반사된 빛을 전기화학적 신호로 바꿔 뇌에 전달하고 빵을 구분한다. 하지만 컴퓨터에는 그런 능력이 없다. 무수한 기호(비트)를 수학적으로 처리해 빵을 구분한다. 번과 베이글, 프레첼을 데이터로 인식한다는 뜻이다.

위상수학은 형태를 데이터로 바꿔주는 학문이다. 사물의 형태를 멀리서 조망한다는 뜻에서 ‘거시적 기하학’이라고도 불린다. 원래는 산업과 연관이 없는 고난도 순수 수학이었지만 인공지능(AI) 기술 부상과 함께 각광받고 있다. 국웅 서울대 수리과학부 교수는 “AI 연산 주체인 기계(머신)가 빅데이터를 가장 잘 처리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지침서가 위상수학”이라고 말했다.

위상수학은 빅데이터 처리 지침서

위상수학의 단초는 18세기 마련됐다. 지류가 여러 개인 강에 걸쳐 있는 일곱 개의 다리를 후진이나 왕복 없이 ‘한번에’ 건널 수 있느냐는 문제(쾨니히스베르크의 다리)에서 위상수학이 나왔다. ‘수학계의 베토벤’이라 불리는 오일러가 제안한 ‘오일러의 정리’에서다. 이 정리는 오일러의 수(면의 개수+점의 개수-선의 개수)로 물체를 정의할 수 있고, 이 수가 같으면 위상이 같다는 내용이다. 쉽게 말하면 구멍 수에 따라 위상이 달라진다. 번과 베이글은 위상이 다르다. 그러나 번과 야구공, 농구공, 정사면체, 정이십면체 등은 모두 위상이 같다.
인체 내 수조 개 세포에 이 원리를 적용해 데이터 분석을 한다면 어떨까. 군나 칼슨 미국 스탠퍼드대 수학과 교수는 이 같은 TDA(위상수학 데이터 분석) 기법을 세계 최초로 개발해 아야스디라는 기업을 2008년 창업했다. 아야스디는 세계경제포럼이 ‘차세대 구글’로 지목할 만큼 독특한 기술을 자랑한다. 아야스디가 개발한 소프트웨어 ‘아야스디 코어’는 미 뉴욕 마운트사이나이병원, 샌프란시스코주립대병원 등에서 사용 중이다. 한국의 경기 성남 분당서울대병원도 TDA를 이용해 심장병 환자들의 향후 생존율과 맞춤형 치료 방안을 연구하고 있다.

맞춤형 치료법 실마리 제시

TDA는 컴퓨터가 이용하는 특수 공간에 빅데이터를 뿌려 특성을 골라내는 마술사다. 예를 들면 정상인, 부정맥 환자, 심방세동 환자 그룹 등으로 나눠 생체 데이터를 수집하고 이를 다차원 공간에 뿌린 뒤 위상학적 속성(오일러의 수)을 파악한다. 이 과정에서 선형대수(행렬과 벡터), 푸리에 변환 등 복잡한 수학 기법이 사용된다.

이어 AI 딥러닝 알고리즘을 가동하고 결과물(증상의 경중, 병의 종류 등)을 산출한다. 이 결과물을 각기 다른 색으로 구분해 그래픽으로 표시해주는 게 아야스디 코어의 핵심 기술인 ‘매퍼(mapper)’다. 2형 당뇨병 환자, 유방암 환자 등의 데이터를 분석한 뒤 환자 그룹을 나눠 맞춤형 처방 기준을 제시한 것이 매퍼의 대표 성과로 꼽힌다. TDA를 활용하면 돈세탁 등 불법거래의 이상 징후도 사전에 포착할 수 있다. HSBC은행은 아야스디 코어를 활용해 불법거래 모니터링을 하고 있다.

신소재, 우주 개발에도 활용

소재의 품질을 높이는 재료공학 분야에서도 TDA가 사용된다. 소재는 통상 분자구조의 ‘균질화’가 이뤄져야 단단해진다. 쇠를 달궜다 식히는 담금질이 대표적인 균질화 방법이다. TDA를 쓰면 원자 하나하나를 ‘점’ 형식의 데이터로 뿌리고, 이들 점의 크기 변화에 따른 모양(위상)을 분석해 소재의 균질화 정도를 파악할 수 있다.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 분석에도 TDA의 균질화 분석이 활용된다. ADHD 환자들은 신경세포 간 연결이 듬성듬성하다는 점에 착안한 시도다. TDA로 뇌파 데이터의 균질화 정도를 파악하면 질병의 경중을 알 수 있고 치료법을 설계할 수 있다.

김민형 영국 옥스퍼드대 수학과 교수는 “시신경이 물체를 인지하는 등 인체 세포 네트워크가 켜졌다 꺼졌다 하는 것은 일종의 수학적 작용”이라며 “정보를 기호로 계산해서 구분하는 방법(위상수학)이 물리학, 우주과학에서 갈수록 중요해지고 있다”고 했다.

■ 위상수학(Topology)

공간 속 물체의 점, 선, 면 등 특성을 토대로 위치와 형상을 탐구하는 수학의 한 분야. 대수학, 기하학, 해석학(미적분) 등과 결합해 컴퓨터과학에서 응용 범위가 급속도로 넓어지고 있다. 인공지능(AI)의 빅데이터 분석, ‘꿈의 컴퓨터’인 양자컴퓨터와도 연결된다.

이해성 기자 i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