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왼쪽)과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수석부회장이 13일 충남 천안의 삼성SDI 사업장에서 만나 차세대 전기자동차 사업에 대해 논의했다. 사진은 지난해 1월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열린 신년인사회에서 두 사람이 악수하는 모습. /허문찬 기자 sweat@hankyung.com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왼쪽)과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수석부회장이 13일 충남 천안의 삼성SDI 사업장에서 만나 차세대 전기자동차 사업에 대해 논의했다. 사진은 지난해 1월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열린 신년인사회에서 두 사람이 악수하는 모습. /허문찬 기자 sweat@hankyung.com
재계 ‘빅2’로 불리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수석부회장이 13일 삼성SDI 충남 천안사업장에서 처음으로 단둘이 만났다. 정부 행사에나란히 초청된 사례는 많았지만 사업과 관련된 논의를 위해 별도의 자리를 마련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두 회사 관계자들은 전기자동차 관련 업체 경영진의 의견 교환 자리가 판이 커지면서 ‘빅2 회동’으로 성격이 바뀌었다고 설명했다. 전기차 배터리를 비롯한 차세대 전기차를 미래 신수종 사업으로 판단한 이 부회장과 정 수석부회장이 ‘협업의 밀도’를 높이기 위해 얼굴을 맞대게 됐다는 얘기다.

두 사람의 개인적인 친분 관계도 이번 만남에 상당한 영향을 줬다는 후문이다. 이 부회장과 정 수석부회장은 사석에서 서로를 ‘형’ ‘동생’으로 부를 정도로 가까운 사이로 알려져 있다. 이날도 세 시간 이상 얘기를 나눴고 오찬도 함께했다. 1968년생인 이 부회장이 1970년생인 정 수석부회장보다 두 살 많다.

지난 30여 년간 삼성과 현대차그룹 오너 경영자들의 사이는 좋은 편이 아니었다. 1993년 삼성이 자동차산업에 진출하면서 두 그룹사의 관계가 불편해졌다는 게 정설이다. 이 부회장을 비롯한 삼성그룹 임원들이 자동차 사업 철수 이후 상당 기간 현대차 대신 쌍용차를 탔다는 사실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2014년 서울 삼성동 한국전력 부지 입찰 때도 두 그룹사가 맞붙었다.

경제계에선 삼성과 현대차의 젊은 총수들이 ‘명분’ 대신 ‘실리’를 택했다고 보고 있다. 손을 잡으면 시너지를 낼 수 있는 분야가 수두룩하다는 판단하에 전격적으로 만나게 됐다는 해석이다. 전기차 배터리 분야도 ‘윈윈’이 예상되는 분야다. 삼성은 현대차라는 든든한 납품처를, 현대차는 안정적인 배터리 공급업체를 확보할 수 있다. 연구개발(R&D) 협력이 가시화되면 두 그룹사가 얻을 수 있는 이익이 더 커질 전망이다.

두 젊은 총수의 경영 스타일이 비슷해 만남이 쉽게 이뤄졌다는 해석도 있다.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최대한 많은 사람을 만나는 것을 총수의 주된 업무로 여기는 게 두 경영자의 공통점이다. 이 부회장은 올 들어 거의 매주 계열사를 방문, 신사업 분야에서 성과를 내기 위해 임직원들을 독려하고 있다. 정 수석부회장과 만난 것을 포함해 올 들어 모두 일곱 번의 현장경영을 소화했다. 기술 초격차를 독려하기 위한 행보가 잦다는 분석이다. 지난 2월 20일 경기 화성사업장 반도체 극자외선(EUV) 노광장비 라인을 방문한 것이 대표적 사례다.

정 수석부회장도 ‘부지런한 경영자’를 언급할 때 빠지지 않고 거론된다. 몇년 전까지는 직접 마이크를 잡고 신차를 소개했다. 올해도 지난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전자쇼 ‘CES 2020’을 방문하는 등 광폭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이 부회장과 정 수석부회장 간 만남은 올 들어 세 번째다. 1월 2일 문재인 대통령 초청 정부 신년 합동 인사회에서 인사를 나눴고, 2월에는 정부 주재 코로나19 대응 간담회에 함께 참석했다. 그간의 만남은 정부가 주도한 행사 및 재계 총수 모임 등에서 이뤄졌으며 사업 목적의 만남은 이번이 처음이다.

경제계에선 이번 회동이 삼성과 현대차의 전략적 협력관계를 공고히 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송형석 기자 clic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