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권 지키려 '황금 낙하산' 탄 기업들
‘대표이사가 적대적 인수합병(M&A)으로 해임되면 퇴직 보상액으로 100억원을 지급한다.’ 지난달 대화제약 주주총회에서 확정된 새로운 정관의 일부다. 적대적 M&A를 방지하기 위한 장치 중 하나인 이른바 ‘황금낙하산’ 조항이다. 이런 규정을 도입하는 상장사들이 최근 잇따라 나오고 있다.

7일 증권업계에 따르면 유가증권과 코스닥시장 상장사 여섯 곳이 최근 정관을 바꾸고 황금낙하산 조항을 추가했다. 반도체 장비업체 에프에스티는 ‘대표이사나 이사가 정상적인 경영활동을 하고 있는데 경영권 위협 세력에 의해 해임되는 경우 퇴직금 이외에 퇴직보상액으로 대표이사에게 각 50억원 이상을, 등기이사에게 각 30억원 이상을 지급한다’는 내용을 정관에 명시했다. 적대적 M&A를 추진하는 측의 재무 부담을 키워 사전에 시도를 막으려는 취지다.

유가증권시장의 비금속 광물회사인 넥스트사이언스는 ‘이사가 임기 중 적대적 M&A 등으로 해임될 경우 통상적인 퇴직금 이외에 퇴직보상금으로 대표이사에게 100억원을, 이사에게 30억원을 지급한다’는 내용을 정관에 추가했다. 소프트웨어 개발사 셀바스AI는 대표이사의 퇴직보상금을 200억원으로 매겼다. 이 밖에 남영비비안 등도 비슷한 조항을 신설했다.

과거 황금낙하산 규정은 대주주 지분율이 낮아 경영권 방어에 취약한 기업들이 주로 도입했다. 특히 자기자본 규모가 작고 주가가 비싸지 않은 코스닥 상장사들이 선호했다. 하지만 최근엔 지분율과 상관없이 선제적으로 정관에 관련 조항을 추가하는 기업이 늘고 있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코로나19 사태 이후 주가가 급락한 틈에 적대적 M&A를 시도하려는 세력이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 미리 대비책을 세워놓는 회사들이 생겼다”고 말했다. 지난해 기업들이 전환사채(CB)와 교환사채(EB)를 대거 발행한 것도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투자자들이 사채의 권리를 행사하면서 신주가 늘어나면 경영권에 위협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반면 황금낙하산 조항이 기업가치와 주주권익을 해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부실기업이 시장의 구조조정을 회피하려는 수단으로 악용할 우려가 있다는 얘기다. 한국기업지배구조원 관계자는 “황금낙하산은 성장 기업의 안정적인 경영을 지원하기 위해 도입됐지만 경영진이 잇속을 챙기거나 자리를 지키는 수단으로 변질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 황금 낙하산

golden parachute. 기업의 경영진이나 임원을 해임할 때 거액의 퇴직금 등을 지급하는 제도. 인수 비용을 늘려 적대적 인수합병(M&A)을 방어하기 위한 대표적인 전략.

김은정 기자 ke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