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원미상 유골 무더기 발굴…옛 광주교도소는 어떤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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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끌려간 시민들 사살, 임시 매장된 시신 일부 확인되기도
무연고 묘지에서 신원 미상의 유골 40여구가 발굴된 옛 광주교도소는 일제강점기인 1908년 광주감옥으로 개설됐다.
1912년 광주 동명동으로 이전해 시설을 유지하다가 1971년 7월 북구 문흥동으로 옮겼다.
5.18 사적지 22호로 지정된 옛 광주교도소는 2015년 10월 삼각동으로 이전하기 전까지 40년 넘게 문흥동 자리를 지켰다.
이 교도소에는 1980년 상무대 영창에 갇힌 시민 4천여명 중 400여명이 투옥됐다.
군 기록과 재소자(수용자)·군인 증언에 따르면 5·18 직후 계엄군에 의해 시민들의 시신이 암매장된 곳 중 유력한 한 곳으로도 꼽힌다.
당시 교도소 주변에서 광주 소식을 외곽으로 알리려던 시민군과 계엄군 사이에 총격전이 벌어졌고, 계엄군의 발포로 광주를 떠나려던 시민과 마을 주민들이 죽거나 다쳤다.
보안대 자료에는 옛 교도소에서 억류당한 시민 28명이 숨졌다고 돼 있으나 5·18· 직후 임시매장된 형태로 발견된 시신은 교도소 관사 뒤 8구, 교도소 앞 야산 3구 등 11구뿐이었다.
5·18 단체는 남은 17명이 옛 교도소 일원에서 암매장당했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발굴을 추진했다.
그동안 보안·수용 시설이라는 특성상 발굴조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지만 2015년 삼각동으로 이전하면서 진전을 맞게 됐다.
법무부는 2017년 11월 5·18 민주화운동 희생자 유해 발굴사업을 할 수 있도록 승인했고 발굴 조사가 시작됐다.
전국 교도소 중 상당수는 무연고 묘역을 갖추고 있는데 광주교도소 역시 동명동과 문흥동 시절에 무연고 묘지가 있었다.
수용자 사망 후 2년 이내에 시신을 인도할 사람이 없으면 시신을 화장하거나 합장한다는 규정에 따라 동명동에서 문흥동으로 이전할 때는 무연고자 유해도 함께 이장됐다.
그러나 삼각동으로 이전할 때는 일부 수용 시설이 5·18 사적지로 지정돼있고 다른 흔적들의 보존과 조사가 필요해 무연고자 유해를 이장하지 않았다.
정부는 문흥동 옛 부지에 사적지와 법체험 테마파크인 '광주 솔로몬 파크', 인권교류 시설 등을 갖춘 복합 문화 공간을 조성할 방침이며 이번 개장이 이런 이유로 이뤄졌다.
/연합뉴스


5.18 사적지 22호로 지정된 옛 광주교도소는 2015년 10월 삼각동으로 이전하기 전까지 40년 넘게 문흥동 자리를 지켰다.
이 교도소에는 1980년 상무대 영창에 갇힌 시민 4천여명 중 400여명이 투옥됐다.
군 기록과 재소자(수용자)·군인 증언에 따르면 5·18 직후 계엄군에 의해 시민들의 시신이 암매장된 곳 중 유력한 한 곳으로도 꼽힌다.
당시 교도소 주변에서 광주 소식을 외곽으로 알리려던 시민군과 계엄군 사이에 총격전이 벌어졌고, 계엄군의 발포로 광주를 떠나려던 시민과 마을 주민들이 죽거나 다쳤다.
보안대 자료에는 옛 교도소에서 억류당한 시민 28명이 숨졌다고 돼 있으나 5·18· 직후 임시매장된 형태로 발견된 시신은 교도소 관사 뒤 8구, 교도소 앞 야산 3구 등 11구뿐이었다.

그동안 보안·수용 시설이라는 특성상 발굴조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지만 2015년 삼각동으로 이전하면서 진전을 맞게 됐다.
법무부는 2017년 11월 5·18 민주화운동 희생자 유해 발굴사업을 할 수 있도록 승인했고 발굴 조사가 시작됐다.
전국 교도소 중 상당수는 무연고 묘역을 갖추고 있는데 광주교도소 역시 동명동과 문흥동 시절에 무연고 묘지가 있었다.
수용자 사망 후 2년 이내에 시신을 인도할 사람이 없으면 시신을 화장하거나 합장한다는 규정에 따라 동명동에서 문흥동으로 이전할 때는 무연고자 유해도 함께 이장됐다.
그러나 삼각동으로 이전할 때는 일부 수용 시설이 5·18 사적지로 지정돼있고 다른 흔적들의 보존과 조사가 필요해 무연고자 유해를 이장하지 않았다.
정부는 문흥동 옛 부지에 사적지와 법체험 테마파크인 '광주 솔로몬 파크', 인권교류 시설 등을 갖춘 복합 문화 공간을 조성할 방침이며 이번 개장이 이런 이유로 이뤄졌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