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히틀러의 음식을 먹는 여자들'

악마는 멀리 있는 게 아니며 평범함 속에도 악마가 있다.

특히 사고(思考) 능력의 부재는 악의 근원이다.

독일 출신 미국 정치 철학자 한나 아렌트가 유대인 수백만 명을 죽음의 수용소로 보내는 업무를 담당했던 아돌프 아이히만을 전범 재판에서 관찰한 뒤 얻은 결론이다.

아렌트가 지켜본 아이히만은 '괴물'이 아니라 상부에서 시킨 대로 업무를 수행했던 '영혼 없는 공무원'이었고, 그저 평범한 중년 가장이었다.

그는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라며 사형 집행 직전까지도 목숨을 구걸했던 신념 없고 겁 많은 사람이기도 했다.

'악의 평범성'은 사고할 능력이 없기 때문이라고 아렌트는 강조한다.

한 나라 리더가 무능한 것만큼 다수에 해악은 없다는 말과도 상통한다.

이탈리아 소설가 로셸라 포스토리노가 쓴 장편소설 '히틀러의 음식을 먹는 여자들'(문예출판사 펴냄)도 이런 평범함에 깃든 악의 문제를 다룬다.

당장 생존의 문제 앞에서 선악 구별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문학적 감수성을 통해 드러내기도 한다.

소설은 2차 대전 당시 사회주의와 전체주의의 야만적 폭압 속에서 나치의 리더 히틀러가 먹을 음식을 먼저 감식해야 했던 여인들의 이야기다.

실제 히틀러의 감식가였던 실존 인물 마고 뵐크의 고백을 바탕으로 했다.

뵐크는 15명의 감식 여성 중 유일한 생존자였다.

그는 2013년에야 '슈피겔'에 과거를 고백했다.

당시 감식 여인들은 전쟁이 끝난 뒤 뵐크만 빼고 모두 처형됐다.

그는 독일 장교의 도움으로 유일하게 살아남았지만, 야만적인 소련군에 붙잡혀 보름 가까이 성폭행을 당했다.

소설에서는 여인 10명이 히틀러 음식에 독이 들어있는지 미리 먹어보는 감식가로 소집된다.

이들은 하루에 세 차례 음식이 주는 기쁨과 죽음의 위협을 동시에 느낀다.

이들은 감식이 끝난 뒤 살았다는 기쁨에 '개처럼' 울어야 했다.

더 괴롭고 역설적인 일은 이들이 '기미 상궁' 역할을 하다 죽을 수도 있지만, 만약 나치가 연합군에 패전해도 '부역자'로 학살될 존재라는 것이다.

어떤 선택을 해도 사지에 설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이들은 충실히 생존 본능을 따를 뿐이었다.

이처럼 인간은 약하고 이중적이며 선악의 문제에서 모순적 존재라는 것을 소설은 드러낸다.

인간의 이중적 본질, 선과 악의 모호성은 히틀러가 동물을 죽이는 일을 야만적이라고 여겨 채식주의자로 사는 것에서도 상징적으로 드러난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