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3년 가택연금 상태서 독재 항거하며 23일간 단식
[순간포착] 단식의 '정석' 김영삼
"지난 83년 5월 18일 광주민주화운동 3주년을 맞아 군사독재정권에 대한 항의 표시로 이날부터 6월 9일까지 23일간의 목숨을 건 단식투쟁을 하던 때의 김영삼 전 신민당 총재. 1983.5.30(본사자료)"
'단식투쟁하는 김영삼'이란 제목으로 연합뉴스가 2009년 10월 26일 발행한 사진에 붙은 설명이다.

사진 촬영 날짜는 1983년 5월 30일인데 발행일은 26년 5개월쯤 후로 한참이나 지나 있다.

연합뉴스가 필름으로 보관하던 과거 사진을 디지털화하며 이때 등록했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이 역사적인 사진을 누가 찍었는지는 현재로서는 알 수가 없다.

사진부와 DB부에 문의했지만 알지 못했고, 당시 근무한 연합뉴스 퇴직 사진기자 대선배들에게도 전화를 돌렸지만 모두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다.

유일하게 최종현(80) 기자만 "그때 사진을 내가 찍은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고 했다.

촬영일인 5월 30일은 단식 13일째다.

환자복을 입고 침대에 누운 김영삼 당시 전 신민당 총재는 기운이 소진한 듯 양쪽 눈을 살짝 뜨고 있다.

머리카락은 하얗게 셌고, 수염은 텁수룩하다.

왼팔에는 수액을 투입하는 튜브가 붙어 있다.

김 전 총재는 상도동 자택에서 단식을 시작했는데 건강 상태가 나빠지자 5월 25일 서울대학병원으로 강제 이송됐고, 병원에서도 수액을 맞으며 단식을 이어갔다.

결국 6월 8일 밤 지지자들이 병실로 찾아가 단식 중단을 요구했고, 김 전 총재는 "앉아서 죽기보다 서서 싸우다 죽기 위해 나의 단식을 중단하는 것"이라며 이튿날 정오 단식을 마쳤다.

당시 정치풍토쇄신을 위한 특별조치법에 따라 가택연금 상태였던 김 전 총재는 학생·종교인·지식인 석방·복학·복직, 언론 통폐합 백지화, 대통령 직선제 회복 등을 요구하며 단식에 돌입했다.

뜻을 관철하지 못했지만 그의 단식은 민주화세력을 하나로 결집하는 기폭제가 됐다.

김영삼과 김대중은 이듬해 민주화추진협의회(민추협)를 결성하고 이를 토대로 신한민주당을 창당, 1985년 총선에서 돌풍을 일으켰다.

그의 단식은 대의를 위한 대표적인 투쟁으로 회자한다.

단식의 사전적 의미는 '일정 기간 의식적으로 음식을 먹지 아니함'이다.

사람들은 요즘 살을 빼기 위해 또는 건강을 위해 단식을 한다.

하지만 투쟁 수단으로서 단식은 전혀 다르다.

육체적으로 힘들고 목숨마저 위태롭게 할 수 있어 흔히 의지를 표현하는 최후 수단으로 일컬어진다.

단식투쟁은 주로 절박한 상황에 처한 사회적 약자들이 선택하는 가장 높은 수위의 저항 수단이다.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가 지난 20일 단식에 돌입했다가 8일째인 27일 밤 의식불명 상태에 빠져 병원으로 옮겨졌다.

요구사항은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종료 철회,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법 포기, 연동형 비례대표제 선거법 철회였다.

황 대표는 단식을 시작하며 "절체절명의 국가 위기를 막기 위해 저는 이 순간 국민 속으로 들어가 무기한 단식투쟁을 시작한다"며 "죽기를 각오하겠다"고 밝혔다.

김영삼 전 대통령 서거 4주기였던 22일에는 추모사를 통해 "가장 어두운 독재 시절에도 '오늘 죽어도 영원히 사는' 정신, '새벽이 온다'는 정신으로 새길을 내셨다"고 해서 그의 단식 역시 YS의 정신의 계승했음을 밝히기도 했다.

이전에도 정치인들은 단식을 했다.

지난해 12월 바른미래당 손학규 대표, 정의당 이정미 당시 대표가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촉구하며 단식에 나섰다가 여야 5당이 구체적 방안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겠다고 하자 9일 만에 단식을 풀었다.

앞서 5월에는 자유한국당 김성태 당시 원내대표가 드루킹 특검 도입이 필요하다며 9일간 단식해 뜻을 이뤘고, 2017년에는 조원진 당시 대한애국당 대표가 박근혜 전 대통령 석방을 요구하며 단식투쟁을 벌이다 14일 만에 끝냈다.

2016년엔 이정현 당시 새누리당 대표가 정세균 국회의장 퇴진을 주장하며 단식했다가 7일 만에 중단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던 2014년 8월 10일간 단식한 적이 있다.

세월호 유가족 김영오 씨 단식을 말리기 위한 동조 단식이었는데, 김영오 씨가 46일간 단식 끝에 미음을 먹기 시작하자 단식을 끝냈다.

우리 정치인 중 역대 최장기 단식은 현애자 전 민주노동당 의원이 2007년 제주 군사기지 건설에 반대하며 실행한 27일이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