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준 효성그룹 회장의 '기술 경영'…글로벌 시장서 통했다
현금자동입출금기(ATM) 제조업은 사양산업으로 불린다. 현금을 쓰지 않는 시대가 도래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자화폐, 신용카드 등이 확산하면서 국내 은행들은 ATM 수를 매년 줄이고 있다. 하지만 ATM 사업을 주력으로 하는 효성티앤에스는 올해 사상 최대 실적을 예고하고 있다. 세계 시장으로 눈을 돌린 결과다. 미국, 인도, 러시아 등에서 수주가 대폭 늘어났다. 조현준 효성 회장(사진)의 ‘글로벌 경영’이 결실을 맺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멕시코·러시아에서 수주 행진

17일 금융정보 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효성티앤에스는 올해 매출 9800억원, 영업이익 960억원을 거둘 것으로 예상된다. 사상 최대 실적이다. 지난해보다 매출은 35.2%, 영업이익은 118.7% 증가할 전망이다. 업계 관계자는 “효성그룹 계열사 중 가장 인상적인 실적을 내고 있다”며 “러시아, 인도 등 신규 시장에서 수주가 늘고 있어 당분간 실적 호조세가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효성티앤에스는 글로벌 시장에서 거침없는 수주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 9월에는 멕시코 정부가 발주한 2000억원 규모의 ATM 8000대를 전량 수주하는 데 성공했다. 사업 초기부터 조 회장이 주도해 멕시코 정부 요구를 적극 반영한 결과다.

조현준 효성그룹 회장의 '기술 경영'…글로벌 시장서 통했다
러시아에서는 1만4000여 개 지점을 보유한 현지 1위 은행 스베르뱅크의 신형 ATM 교체 프로젝트를 따냈다. 효성티앤에스는 2022년까지 총 5만4000대의 ATM을 공급할 예정이다. 효성티앤에스의 러시아 ATM 시장 점유율은 70%에 달한다.

미국 시장에서도 점유율 46%로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최근 미국 은행들이 무인 점포를 늘리면서 ATM 수요가 다시 증가하고 있다. 효성티앤에스는 미국의 체이스뱅크, 뱅크오브아메리카(BoA) 등에 2만 대 이상의 ATM을 판매했다. 이 덕분에 올해 미국 시장 매출은 작년보다 40% 늘어난 2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2009년 진출한 인도 시장에서도 현지 최대 은행인 SBI 등에 ATM 공급을 확대하고 있다.

조 회장은 이 과정에서 ‘영업맨’을 자처했다. 각국 은행의 고위 인사들을 만나 수주를 타진하고 수시로 해외 지점을 방문해 품질관리와 사후서비스를 점검했다.

일본산 부품 국산화

부품 국산화도 실적 호조에 한몫했다. 효성티앤에스는 일본산 핵심 부품을 국산화해 수익성을 높였다. 신형 ATM의 핵심 장치는 ‘환류식 지폐입출금모듈(BRM)’이다. 입금된 지폐를 출금할 때 다시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기술이다. 입금기와 출금기 두 대의 기기를 한 대로 통합해 ATM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 2000년대 중반까지는 히타치, 후지쓰전기 등 일본 업체들만이 환류 기술을 보유했다.

효성티앤에스는 국책 과제에 참여해 2009년 ATM 원가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했던 BRM 자체 개발에 성공했다. 효성티앤에스 관계자는 “환류 기술을 독자적으로 확보하면서 기술경쟁력과 가격경쟁력을 모두 높일 수 있었다”고 말했다.

효성티앤에스의 환류 기술은 신형 ATM 교체 수요가 높은 미국과 러시아 시장에서 점유율을 확대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다. 조 회장은 임직원들에게 “기술경영이 효성의 DNA”라며 “ATM 사업처럼 원천기술력을 확보해야 글로벌 시장에서 성공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최만수 기자 bebop@hankyung.com